2010년 5월 30일 일요일

SHE&HIM 리뷰-솔로만세

 

 

 

 

 

 

 


 솔직히 난 음악 평론가도 아니고, 음악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한다. 허나 듣는 건 좋아한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러리라고 믿는다. 듣는 걸 좋아한다. 들을 때 귀에 착착 감기면, 그게 좋은 음악인 것 같다. 고전 클래식도 헤비메탈도 락도, 그리고 팝까지 묘하게 맘에 드는 것만 쏙쏙 찾아 듣는다. 일부러 전문가인 척 하면서 써봤자 나에게도, 그리고 나와 같은 입장에 있는 타인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인디로 돌아가자.

 이 앨범은 인디스럽고, 인디 기획사에서 나왔다. 우리의 통념으로는 인디는 그닥 유명세를 타는 일이 없다. 허나 SHE & HIM은 다르다. 주이 디샤넬은 여배우, 가을 하늘처럼 맑고 나뭇결처럼 깊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예쁘다. 그리고 노래를 잘 부른다. 우리는 다들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아마 이 앨범의 트랙을 처음부터 끝까지, 빼놓지 않고 다 들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이런 달달한 음악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왠지 다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을 할 지도 모른다. 사실 그렇다. 어떤 감정도 SHE & HIM은 달콤하게, 혹은 부드럽게 노래하고 있다. 물론, 아주 찢어질 정도로 높은 음과 지하도로 몇번쯤 달렸을 것 같은 낮은 음을 오가면서 감정의 기복을, 나 화났어-나 슬퍼-나 아파-나 지금 사랑하고 있어를 더 수월하게 표현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비극을 보면서 고대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슴을 쥐어뜯고 두 손을 벌리면서 우는 배우를 보면서. 처음에는 슬프고 무서웠을지도 모르지만. 손수건을 붙잡고 비명소리를 내질렀을지도 모르지만. 허나 무거운 추를 계속 올려 놓다 보면 운동이고 뭐고 우선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듯, 커피만 줄창 마시다가 문득 단 게 그리워 졌을 때처럼. 살짝 질렸을지도 모른다.

 SHE & HIM은 구름처럼 가볍다. 잡아본 적이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은 없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주인공은 시종일관 진지하게 상황을 고찰하고 문제를 타개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왠지 모르게 나쁜 쪽으로만 향하게 한다. 평균대 위에서 균형을 잡고 앞으로 가려고 했는데 어느새 게처럼 옆으로 가다가 결국 헛디디게 되는 꼴이다. 주이 디샤넬이 맡은 여주인공은 그 반대다. 당차고, 무슨 일이든 먼저 행동으로 선보인다. 이 음악도 그렇다. 왠지 이 앨범을 들으면서 '히치하이커'의 명곡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가 떠오른 건 왜일까. 지구 멸망의 순간에도 돌고래들은 낙천적으로, 제들 세상 하나 떼어내 진 채로 이 세상을 뜨는구나.

 인디는 이런 점에서 즐겁다. 진지한 척 하면서 농담하기, 밝게 웃으면서 뒤통수 치기. 마치 달콤한 케익과 사탕, 초콜릿들을 앞에 두고 '먹어도 좋아. 하지만 살은 찔거야.'라고 속삭이는 친구처럼 얄밉게 노래하는 데에는 인디를 따라올 게 없다. 인디는 가볍다. 나쁜 게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든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 무조건 무거운 게 옳은 것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어렸을 적 상자 두 개를 두고 하나를 고르라는 새의 말에 욕심쟁이 영감은 무거운 쪽을 고르지만, 그 안에는 영감이 바라던 상이 아니라 다른 게 숨어 있었다. 옛 어르신들도 그러지 않는가. 믿어라. 좀.

 여기서 끝내기는 아쉬우니 우리 재킷 이야기나 해볼까. 앨범 재킷이 정말 귀엽다. 만약 여자친구한테 '오빠가 음악 하나는 잘 알잖니 오빠만 믿어'라고 했지만 전혀 보증 수표가 없는 오빠라던지,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지만 생일 선물을 챙겨줘야 하는데 하필이면 얘가 음악을 좀 잘 안다. 는 것 때문에 난감한 사람이라던가. 그런 분들에게는 이 SHE & HIM이 좋은 해결책이 되리라고 믿는다. 포장지 따로 쓸 거 없다. 재킷이 너무 예뻐서. 달콤하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고, 물론 무거운 진지함을 추구하거나 무거운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조금 난감할 수도 있겠다. 허나, 이 음악은 어디든 스며든다. 배경음악으로도 딱이다. 가사들도 예쁘다. '500일의 썸머'의 여주인공이 부를 법한 노래들, 약간 세상을 달관한 듯 하면서도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아이들, 어른들에게 좋은 약이 되리. '세상은 다 썩었어 뜯어고쳐'나 '난 왜 살까' 같은 직설적인 가사보다는 은근히 돌려서 말하는. 슬그머니 당신의 옆구리를 찌르는 재치.

 어쩌면 이게 시일지도 모른다. 사실 시와 노래 가사는 같이 가다가 헤어진 가족이다. 쌍둥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대중 가요들이 '넌 내게 빠져 언더 마이스킨'이라고 외칠 때, 멜로디에 잘 맞고 쉽게 부르기 위한 것도 필요하지만 가끔은 쓴 약도 필요하다. '하루만 니 고양이가 되고 싶어'가 더 낫지 않은가. 난 네가 너무 좋아서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애정을 돌려 말하는 표현이지 난 네 고양이가 먹는 사료가 부러워서 네 고양이가 되고 싶다는 직설적 표현은 아니니까. 내가 가사 부분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멜로디보단 가사에 대해서 말하는 게 나에게는 더 익숙해서. 그리고 이렇게 달달하고 왠지 발구르기를 하면 구름 너머까지 뛰어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음악은 왠지 모르게 낯간지러워서. 무엇보다도 나한테는 SHE는 있지만 HIM은 없다. 솔로 만세.

 

 

 

+++아울러 처음으로 배너를 제대로 달아보는...다른 이벤트 할 때만 해도 배너를 제대로 달 줄 몰라 번번히 운영자 분들을 의도치 않게 골탕먹이곤 했는데 기쁘다. 이렇게 하는 거로구나.

 

 

 

 

 

 

 

2010년 5월 6일 목요일

웃기는 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스터디라고 했으면서 막상 엠티를 가고 엠티때에는 다 와야 좀 싸게 간다고 난리니 이거 어이가 없다. 꼭 유태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게토를 지었다고 말하고선 유태인들 중 몇몇이 안 들어가니까 몽둥이 휘둘러서 들어가게 하는 꼴이다. 양도 아니고. 갑자기 가기 싫어진다. 그냥 혼자 어디 처박혀서 글이나 쓰고 왔으면 좋겠다. 템플 스테이를 알아보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사촌동생 과외가 있다. 대학은 원래 가든 말든 네 상관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서 후회할 게 뻔하다.

 

 

 케이트 폭스의 '영국인 발견'은 처음부터 웃긴데, '인류학자'들이 왜 험하고 궂은 데만 다녀야 하는지, 막상 편한 데에서 연구해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게. 맞는 말일세. 그런데 한국인 연구는 과연 어떨까. 한국인 발견! 이 나오면 아마 우리 나라를 사랑하는 맘이 없다고 싸잡아 까이고 우리아버지회로부터 총공을 받으려나. 정말 우리 나라 멋있다. 어쩌면 그렇게 애국심이 투철해서.

 

 욕을 썼다가 지운다.

 

 영국인 발견이라는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책이 한국에 번역된 것도 우리 나라 사람들 입장으로 바꿔보면 참 놀랄 일이다.

 

 

 

이번에는 다른 글이예요.

 

 

 하지만, 완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을 거예요.

 

 

다 부숴버리고

 

 

 다 부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인주의 삶을, 어쩌면 일부분밖에 건져내지 못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정희처럼. 내가 예전에 썼던 소설의 일종의 히로인인 여자애 이름은 '은조'였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나온 어떤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이...

 

 미겔 데 우나무노처럼 좌절해서 작가에게 달려들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 주인공이 날 공격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둘 다 나가 떨어지면 그가 죽고 그 죽음을 쓴 나도 따라서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나라는 인물을 쓰고 있던 누군가가 기지개를 편 다음 펜을 들어 쓸 것이다. 끝.

 

 넷북 전원 좀 꽂고 쓰고 싶어. 언제 끊길 지 모르니까 불안해서 못 쓰겠어.

 

 담배도 술도 하고 싶고 어디 미친 듯이 뒹굴다가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삶에 대한 집착이 참 강하다.

 

 왜 죽지 않느냐고 동기가 비꼬았다.

 웃으면서 컵에 있던 물을 동기의 얼굴에 끼얹었다.

 몇년만에, 그 감정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그대로 화를 냈다.

 

 외동이라서 슬픈 게 아니라 그 앞에 죽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슬프다.

 죽어야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무섭고 소름끼친다.

 

 모기가 세번째로 손가락을 물었고

 발톱 옆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질 않는다. 양말 끄트머리에는 이미 검붉은 점이 한두개씩 자라나고 있었다.

 

 어떤 작가를,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것도 있을테고, 솔직히 그 책을 아주 주의깊게 읽었다고도 자부할 수 없으며 애당초 내가 그 책을 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괜히 좋아했다고 대답했다간 아주 당혹스러운 듯 '왜?'라고 물어올 그 사람의 표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싫어하는 작가들도 많다. 이상한 데에서 닮았다고 생각되면, 순간 소름이 끼쳐서 책장을 덮어버리게 된다.

 

 타인에게 나 자신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끊임없이 연락하게 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어쩌면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맘을 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믿기지 않는 과거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기, 타인은 이걸 거짓말로 받아들이고 결국 관계는 파국에 이르른다. 대화에서 너무 심각하거나 당장 일어나 머리를 망치로 깨부술 것 같은 극단적인 분위기는 싫다.

 

 5월달의 무덤도 아름답다. 5월달의 신부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취업이 안된대. 어떻게 할거야? 뭐하고 먹고 살지? 이 모든 물음에 대하여 경례. 늘 꾸준히 우리의 목을 조여주시는 분들이랍니다. 그런데 이미 익숙해져서 간간이 숨을 이어가는 기도, 목울대까지 끊어버리길 기원하고 있을 뿐이예요.

 

 

 

 사람을 가장 쉽게 비웃을 수 있는 극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희극은 웃다가 나중에 깨닫고 비극은 죽기 직전에야 깨닫는다. 희극은 끝난 다음 화를 낼 수 있지만 비극은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감쪽같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소포클레스는 희대의 악당이다.

 

 

 

 

 

 

 

 

 

 

얼개? 얽개?

 

 

박성원의 '얼룩'과 '울란바토르 캠핑카...', 두 단편은 어느 하나 없이는 그 특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된다. 아니, 사실 '얼룩'이 그 덕을 더 많이 본다. 사람들은 '얼룩'을 두고 너무 흔하고, 추상적인 글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저 짐작으로만 그 내용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울란바토르'와 대칭을 이루면서, '얼룩'은 새로운 의미로 거듭나게 된다. '얼룩'의 끝에서 '울란바토르'의 시작이 맞물리고, 이는 이 사이에 있는 새로운 내용을 상상하게 한다. 박성원은 교묘하게, 사소해 보이는 고리와 고리로 길고 질긴 쇠사슬을 만든다. 그래서 '현대문학상' 수상집에는 '얼룩'과 '울란바토르'가 같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수상작 '얼룩' 옆에 '울란바토르'도 같이 써놓았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후자의 제목이 길어서...그런 것 같기도 하다. 수상작 표지는 정해져 있고.

 

 어린이날인데 성묘를 다녀왔다. 뭔가 이상하다. 할머니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고, 나는 그 옆에서 엄마라도 된 것마냥 하나하나 챙기기에 바빴다.

 

 오렌지가 너무 좋다. 맛이 없는 것이든, 단 것이든, 이가 시릴 정도로 신 것이든.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었다.

 

 교수님은 기본기는 충실하지만 너무 모범생답게 쓴 글이라고 합평을 해주셨고, 나는 그 말에 안도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시도를 할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바탕색을 칠했고 그 위에 색다른 색을 얼마든지 입힐 수 있다. 검은색이 되기 전까지는. 너무 성급하게 아무 색이나 덧칠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사투르누스가 손을 뻗어 도망치지 못하게 다리부터 씹어먹고, 어느새 나는 트라키아 섬에 떠내려간 오르페우스가 되거나, 한강 둔치에 갈비뼈가 부러진 채, 썩지도 못하고 누워있는 연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왜 민들레가 우주와 닮았다고 하는가. 아마 홀씨들이 가볍게, 빽뺵하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고서. 하지만 그렇게 단순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어쩌면 단순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민들레의 홀씨는 무엇을 파괴하는 핵무기가 되지도 않고, 목을 꿰뚫는 창살이 되지도 않는다.

 

 혼자 카페에 앉아 있노라면 갖가지 생각이 든다. 인터넷이 안 되야 글을 쓴다는 명료하고 간단한 생각.

 

 혹은 메뉴 하나를 시킬까. 하지만 오렌지도 먹고 오봉팽에서 사온 스콘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사실 저녁을 먹고 싶은 마음이 없다. 느즈막히 들어가서 저녁은 먹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동기는 자신의 친구의 말에 상처받았다 한다. '너, 인생 잘못 살았어.' 라니. 아직 반도 채 오지 않았건만. 맘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게 성공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어쩌면 나를 위한 변명일지도 모른다. 돈주고는 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산채 비빔밥을 억지로 씹어 먹으면서, 나는 연신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녀가 내 눈치를 보면서 맘을 털어 놓을 사람을 손으로 꼽는 와중 내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에 이상스레 감사하게 되었다. 만약 타인이 나에게 맘을 열었는데, 나는 열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거나 아직 열지 않았다면 그만큼 미안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타인을 완전히 미워할 수 있을까?

 

 윤리는 도덕 이상, 어쩌면 노을을 보면서 문득 밤을 두려워하는 사람의 표정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다 헛소리일 뿐이다.

 

 정말 미쳐버린 것 같아. 한국은. 북카페라는 곳에 꽂혀 있는 책들은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반갑다, 군대야!'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파워 엘리트'. 대체 뭘 말하고 싶은 건가?

 

 카페베네는 그 특유의 의자가 좋고-홍대점이 제일인 것 같다.-오봉팽은 의외로 스콘과 머핀이 강적이다. 베이글도 맛있다. 그리고 커핀 그루나루는 별로 좋은 점은 없다. 비싸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타입은 사람도 많고 무관심도 가득한 외대의 노엘인데 거긴 너무 멀다.

 

 구글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은데, 대체 무슨 검색어를 넣었길래 그런건지 모르겠다.

 

 네이버로 들어오는 사람도 마찬가지, 누가 무슨 검색어를 넣었길래. 솔직히 아는 누군가가 글이라도 한번 남겨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난 예종 학생도 아니거니와 블로그에 무슨 방법론을 올려 놓은 것도 아니고 카페 리뷰를 써놓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영화 리뷰를 레포트로 써가야 하는 또다른 대학생인가.

나중에...'커서'라는 표현을 쓰고서는 웃겨서 넘어갈 뻔 했다. 나이가 좀 더 들고 돈을 충분히 모아서 카페를 열고 싶다. 그러면 적어도 누가 오가는지는 알수 있을테니.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아마, 믿거나 말거나 정말로 있었던 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피아니스트의 전설'


펼쳐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