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맛보기'라는 책은, 다른 책들처럼 그 나라의 명소만을 소개하는 게 아니다. 명소라는 곳은 우선 맛있지만 비싸고, 예약을 해야 하거나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씁쓸하기 이를 데 없다. 저번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선배는 나름 미슐랭 가이드에서 극찬하는 곳을 예약했지만, 가격에 눈물짓고 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 사람들이 먹고 사는 음식, 그걸 먹는 게 유럽을 맛보는 것일텐데. 우리는 깨끗하고 편한 곳만 찾아다니느라 어쩌면 겉핥기로 유럽을 맛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레스토랑은 대부분 음식을 다른 나라 사람 입맛에 맞춘다. 선배는 사실 그 레스토랑에서 먹은 파스타보다 호텔이 있던 동네 구석 쪽의 초라한 파스타 가게가 더 맘에 들었다고 말했다.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맛도 좋았다고. 사람들이 정장을 입고 조용히 칼질을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며 접시가 서로 부딪치는 곳이 더, 유럽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참 놀라운 것이, 저자는 우리가 슬쩍 지나칠 수 있는 유럽의 다른 음식들까지 보여준다. 우리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갈비찜은 알지만 곱창구이는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갈비찜이라면 넌, 껍데기와 곱창이야. 껍데기와 곱창구이가 얼마나 맛있는데. 저자는 스스럼없이 사람들이 소주 한잔과 기울이며 먹게 되는 안주들을 내밀 것이다. 그 안주들에서는 온기가, 그리고 즐거운 냄새가 풍길 것이다. 빵과 파스타, 햄, 치즈, 마카롱, 수많은 야채들과 젤라토.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고인다. 직접 가지 않아도 좋고, 직접 가는 사람들에게는 유럽을 좀 더 맛볼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이탈리아표 자장면도 배달이 되나요?

저자는 볼로냐를 '먹보들의 도시'라고 부르고 있다. 놀리면서도, 은근슬쩍 애정을 보인다. 순대와 비슷한 테린을 소개하고, 메밀부침이 떠오르는 크레이프를 소개한다. 사실 우리가 아는 크레이프는 일본식 크레이프다. 반죽보다 그냥 그 안에 든 게 중요한 것. 홍대입구에서 먹는 크레프가 아마 그 일본식 크레프일 거다. 딸기와 치즈케이크, 온갖 소스. 먹기만 해도 살이 푹푹 찔 것 같다. 하지만 유럽의 크레이프는 다르다. 봉평에서는 메밀부침에 이것저것 속을 넣어 사람들의 배를 든든하게 해준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크레이프가 식사용으로 쓰인다. 봉평에 문학 세미나로 갔을 때 이 메밀전병을 세 번 먹었는데, 그 세 번 다 너무 맛있어서 몸부림을 칠 지경이었다. 아마 유럽의 크레이프도, 아주머니들이 덤덤하게 부쳐주면서 '먹어!'라고 내밀테지만, 그 끝에는 밥은 먹고 다니냐? 라는 걱정스런 물음이 묻어 있을 것이다.
또한 볼로냐의 자장면, 탈리아텔레 알 라구가가 있다. 저자는 볼로네즈 스파게티가 여기서 파생된 음식이라고 말해준다. 하지만 스파게티처럼 우아하게 면을 후루룩 먹는 게 아니라, 자장면처럼 흡입하듯이 먹는 것. 그리고 내숭을 떠는 게 아니라 배고픈 자의 배를 가득, 듬직하게 채워준다는 것을 말해준다. 라자냐도 마찬가지다. 내가 먹어본 라쟈나는 사실 모 프렌치 부페에서 먹은 게 다다. 라자냐는 왠지 살이 안 찔 것 처럼 생겨서, 먹어도 배가 안 부를 것 같았는데 유럽에서는 다르다. 온갖 기름진 것들을 다 꾹꾹 우겨넣고 겹쳐넣고, 그리고 양심상 고기를 먹다가 상추를 생으로 집어먹듯 라자냐 사이에 시금치를 껴넣는다. 수제비, 만둣국과 비슷한 토르텔리니 인 브로도도 나온다. 저자는 힘든 자신의 몸을 일으켜 주는 수프였다고, 그렇게 말한다. 이 음식들은 모두 이 곳의 사람들이 먹고 자란, 엄마의 음식들이다. 사랑스럽지 않은가. 이들도 살아가고, 숨쉬고, 웃고, 먹고, 떠든다. 저자가 천천히 짚어주는 음식들을 보면서, 우리는 입맛을 다시고, 왠지 모를 그리움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한테 하나만 물어보자. 이탈리아식 자장면은 배달, 되나? 안 되겠지...
스팸 한장에 흰밥 뚝딱

우리는 사실 '햄'이나 '소시지'를 그냥, 전세계적으로 똑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 보통 먹어야 겠다고 달려드는 건 치즈 아니면 파스타, 혹은 타르트다. 저자는 그런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면서도 식사용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식사용이라고. 빵들도 딱히 화려하지 않다. 우리에게 쌀이 밥이라면 유럽 사람들에게는 빵이 밥이다. 밥에 괜한 기교를 부리는 건 솔직히 영양밥으로도 충분하다. 푸알란의 미슈라는 빵이 바로 그 좋은 예시인 듯 싶다. 투박하고 왠지 모르게 끌리는 빵. 우리의 쌀밥처럼. 화려한 장식이나 단호박 크림치즈가 들어 있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여튼 햄으로 돌아가보자. 나는 이전에 친구 덕분에 어떤 나라에서 가져왔다는 생햄을 먹어본 적이 있다. 그 때 그 쌉쌀한 맛과, 참을 수 없는 누린내라니. 코를 막고 먹었지만 사실 그 맛은 아직도 내 혀 끝에 남아 있다. 저자는 햄 '쿨라텔로'를 소개한다.
일단 다른 햄과는 달리 첫맛에 좀 톡 쏘는 느낌이 든다. 삭힌 홍어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자연적으로 삭힌 것이어서 그런가 보다. 부드러운데 은근히 고소하면서 입안 가득 담백한 풍미가 퍼진다. 조금 단맛도 난다. 30개월은 좀 더 센 맛인데, 신맛이 조금 감돌면서 담백하다. 확실히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햄의 맛, 타고는 미식가는 못 되는지 첫입에 '아, 이 맛이다'라는 황홀한 느낌은 아니다. 외국 사람이 묵은지의 맛을 느끼기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하겠지.
저자는 만약 입에 맞지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한번은 꼭 먹어봐도 좋을 음식이라고 말해준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들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송로 버섯도 마찬가지다. 송로 버섯은 사람들이 듣기만 하거나 레스토랑에서 아주 비싼 가격으로, 찔끔 먹어본 적이 있을텐데 송로버섯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해주면서 무조건 맛있다. 이 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바보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어쩌면 안 맞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랬다. 다른 나라 음식이고, 묵은지의 맛을 못 느끼는 외국인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해준다. 덕분에 사람들은 책을 읽으면서도 한 시름 덜게 된다. '하몬 이베리코'도 저자가 소개하는 햄인데, 스페인의 정취를 담고 있다고 말하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영화 '하몽하몽' 알아요? 그 '하몽'이...
그래서 이 책은 다른 미식 관련 책들보다 더 다가가기 쉽고, 얻는 것이 더 많다. 만약 유럽에서 미식 여행을 하려고 해도 돈이 그닥 없고, 힘들다면 책에 실린대로 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물론 비싼 음식들도 있지만, 그만큼 저렴하고 그 나라 사람들이 먹는 음식들도 있다. 아니, 좀 더 많은 편이다.
고기 반찬이 나는 너무너무너무 좋더라
내가 사실 이 책에서 가장 감명 받은 부분은 바로 '오피치나 델라 비스테카Officina della Bistecca'였다. 세계 최고의 푸주한인 다리오 체키니가 고기의 모든 부위를 다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일주일에 단 한번 열리는 소고기 세미나. 사실 우리 나라에서 세미나라는 말은 학술 분야에서나 쓰인다. 음식이라니. 이들은 음식을 하나의 철학으로 승화시키고, 그 철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식객' 덕분에 음식의 도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게다가 테이블보 위에 엄숙하게 찍힌 말이라니.
속을 비우고 와라. 우리는 조금만 먹을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사실 이 파티 부분을 읽는 동안, 입에서 절로 침이 흘렀다. 특히 판차노 스테이크의 단면을 찍은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살이고 뭐고 상관없으니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우리 나라에서는 사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뭘 먹는다는 게 고역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저도 모르게 소리지르고 먹고 이야기하고 웃게 된다. 파티기 때문이다. 보면서 내내 그 분위기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또 어떻게 음식점을 예약해야 하는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물론 다른 미식가 분들도 책을 펴낼 때 그렇게 쓰겠지마는 왠지 약을 실컷 올린 다음에 '너도 한번 먹어봐'라고 약올리는 것 같다는,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아, 유럽이여. 한입 베어물면, 온갖 맛으로 혀 끝에 스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