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6일 목요일

다 부숴버리고

 

 

 다 부숴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 안다고 생각했던 인주의 삶을, 어쩌면 일부분밖에 건져내지 못했던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정희처럼. 내가 예전에 썼던 소설의 일종의 히로인인 여자애 이름은 '은조'였는데 하필이면 이번에 나온 어떤 드라마 여주인공 이름이...

 

 미겔 데 우나무노처럼 좌절해서 작가에게 달려들만큼 생명력이 넘치는 주인공을 만들고 싶다. 주인공이 날 공격하고, 나는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둘 다 나가 떨어지면 그가 죽고 그 죽음을 쓴 나도 따라서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면 나라는 인물을 쓰고 있던 누군가가 기지개를 편 다음 펜을 들어 쓸 것이다. 끝.

 

 넷북 전원 좀 꽂고 쓰고 싶어. 언제 끊길 지 모르니까 불안해서 못 쓰겠어.

 

 담배도 술도 하고 싶고 어디 미친 듯이 뒹굴다가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삶에 대한 집착이 참 강하다.

 

 왜 죽지 않느냐고 동기가 비꼬았다.

 웃으면서 컵에 있던 물을 동기의 얼굴에 끼얹었다.

 몇년만에, 그 감정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그대로 화를 냈다.

 

 외동이라서 슬픈 게 아니라 그 앞에 죽은 이들이 있기 때문에 슬프다.

 죽어야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한없이 무섭고 소름끼친다.

 

 모기가 세번째로 손가락을 물었고

 발톱 옆에 난 상처에서는 피가 멈추질 않는다. 양말 끄트머리에는 이미 검붉은 점이 한두개씩 자라나고 있었다.

 

 어떤 작가를,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자신이 없는 것도 있을테고, 솔직히 그 책을 아주 주의깊게 읽었다고도 자부할 수 없으며 애당초 내가 그 책을 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괜히 좋아했다고 대답했다간 아주 당혹스러운 듯 '왜?'라고 물어올 그 사람의 표정이 두렵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싫어하는 작가들도 많다. 이상한 데에서 닮았다고 생각되면, 순간 소름이 끼쳐서 책장을 덮어버리게 된다.

 

 타인에게 나 자신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끊임없이 연락하게 되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어쩌면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맘을 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믿기지 않는 과거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기, 타인은 이걸 거짓말로 받아들이고 결국 관계는 파국에 이르른다. 대화에서 너무 심각하거나 당장 일어나 머리를 망치로 깨부술 것 같은 극단적인 분위기는 싫다.

 

 5월달의 무덤도 아름답다. 5월달의 신부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취업이 안된대. 어떻게 할거야? 뭐하고 먹고 살지? 이 모든 물음에 대하여 경례. 늘 꾸준히 우리의 목을 조여주시는 분들이랍니다. 그런데 이미 익숙해져서 간간이 숨을 이어가는 기도, 목울대까지 끊어버리길 기원하고 있을 뿐이예요.

 

 

 

 사람을 가장 쉽게 비웃을 수 있는 극은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희극은 웃다가 나중에 깨닫고 비극은 죽기 직전에야 깨닫는다. 희극은 끝난 다음 화를 낼 수 있지만 비극은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감쪽같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소포클레스는 희대의 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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