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12일 일요일

'스위치switch'-발랄, 아쉬운 발랄.

 


 영화 '스위치'를 봤다. 학교에서부터 택시를 타고 왔다. 원체 사람이 잘 오지 않는 동네라 그런지 상영관에는 사람이 나와 친구 둘밖에 없었다. 좌석은 총 66석인 소규모의 극장이었지만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로맨스, 코미디 영화를 볼 때면 나는 제스쳐가 커진다. 다른 영화를 보면 오히려 더 조용해지거나 하는데 왠지 모르게 손을 내젓거나 큰 소리로 웃게 된다. 어쩌면 영화 자체에서 주는 흥겨운 분위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웃는 사람이 나 혼자면 조금 무안해지는 법이다. 친구도 열심히 웃다가 텅 빈 상영관 때문에 머쓱해져서 둘 다 조용히 앉아 있기만 했다. '미혼모', 싱글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나가는 지 궁금했다.
 '여성'의 본능이 재생산이며 양육이라는 말은 솔직히 이전 여성학에서 여러번 번복되어 온 문제적 발언이다. '모성애'라는 건 사실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는 '모성애'가 아니라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미혼모-싱글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몇몇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자에 대해 혐오감이 있는 사람들, 아니면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렇게 된 사람들. 하지만 이는 편견일 뿐이다. 오히려 '스위치'의 여성들처럼 스스로 결정하는 여성들, 물론 그만큼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남자'보다는 '아이'가 우선인, 사실 '스위치'에게 바란 건 바로 이런 면이었다.

 

 

 가끔 네가 미칠 정도로 보고 싶어질 때가 있어

 '가족'이라는 것은 모든 트라우마의 근원이고 모든 '나'의 토대이다. 기본적으로 '나'를 보호해 주는 것, 어떻게든 부정해 봐도 그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스위치'는 새로운 가족 만들기에 대한 영화이다. 물론 영화 장르상 가볍게 다루고 있기는 하다. 마치 '싱글맘'인 여성은 재생산이라는 본능에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듯하고(계기) 아이를 갖기 위해 임신 파티를 열며(실행) 아이를 낳는 데에 성공한다(결과). 하지만 '친 아버지'라는 것은 의외로 끈질기게 달라붙는다. 그것도 '싱글맘'이었던 여성이 아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이를 단순히 혈연적 끌림이나 직감이라고 하기에는 무책임하다. 이 영화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이 '어려운 문제들'을 드러내면서도 '가볍게' 뛰어넘는 경쾌함이었다. 헐리우드 영화들, 로맨스 코미디들은 특히 이런 면모가 강했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연애 소설을 기반으로 했지만 나름 '오만과 편견'의 현대판, 은근슬쩍 신데렐라 스토리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칙릿-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스위치'에서는 이 '싱글맘' 문제가 대충 얼버무려지고 만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어머니와 자신이 아버지임을 밝히지 못하는 남자.

 

 이 영화에서 살아 있는 인물은 아버지, 월리 뿐이다. 월리는 본래 자기중심적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는 이성적이며 솔직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무언가 빙 둘러 말하지 않고 곧장 찌르는 바늘같은 말이다. '캐시'는 월리가 아직도 사랑하는 여자지만,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렸을 뿐이다. 월리는 그 한계를 알지만 포기하지 못한다. 너무 사소한 것들은 입밖으로 내어 말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 가령 '캐시'의 아들 세바스찬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던가 하는 것들. 하지만 이 캐릭터 또한 '걱정하는 텀'이 너무나도 짧다. 차라리 월리 스스로가 자신이 나이가 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라. 그리고 캐시를 사랑한다는 것도 깨닫게 하라. 월리의 변화는 우리가 알아볼 수 없는 새에 너무 급작스럽게 일어난다. 어떻게 보면 월리는 세바스찬을 자신이 사랑하는 '캐시'와 떨어뜨려 놓았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접해야 한다. 하지만 '혈연'이라는, 그 끈끈해 보이는 관계로 너무 쉽게 엮어버린다. 게다가 '사랑해'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월리는 용감한 사람이 아니었다.
 세바스찬은 액자에 끼워진 샘플 그림들로 자신의 부성애적 결핍을 채우려 한다. 월리가 그의 가족이 된 이후 세바스찬의 액자에는 월리와 찍은 사진들이 가득 차는데, 이는 부성애적 욕망이 채워졌음을 말해준다. 세바스찬이 월리를 좋아하는 것도 조금 의문이 든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에서 중점을 둬야 할 점은 '캐시'였다. 싱글맘이라는 것, 이 위치는 미묘하고 다루기가 힘들다. 한쪽으로 치우치면 불쌍한 싱글맘이 되어버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너무 센 싱글맘이 되어버린다. 불쌍하면 서사가 재미없어지고 세면 마녀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영화 '스위치'에서 캐시의 위치는 너무 애매모호하다.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상관없다. 세바스찬과 월리와의 관계가 중요한 것일 뿐 캐시의 위치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캐시는 일종의 '장치'로 보일 뿐이다.

 

 


 가족의 탄생

 

 영화는 너무 쉽게 흘러간다. 모든 상황들은 다 정해져 있고, 월리는 무조건 캐시에게 고백해야 한다.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긴장도 너무 짧다. 마치 '아버지'가 꼭 있어야 한다는 듯이 말하는 '캐시'를 보면, 사실 이 감독이 생각하는 싱글맘의 이미지는 '불쌍한' 여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의 탄생'은 무조건 세 축이 있어야만 되는 게 아니다. 그냥 두 개의 다리로 서 있던 테이블에 다리 하나가 더 끼어드는 것 뿐이다.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 영화를 보자면, 싱글맘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다른 형태의 가족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 관계가 없을 것만 같던 사람들을 만나고, 서먹해 하고, 울고 웃다가 가족이 된다. 가족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타인과 타인일 수 있는 사람들이 한데로 엮이는 것이다. 이 접합은 갑작스러울 수도 있지만 섬세하게 다가가야 한다. '싱글맘'이라는 소재, 그리고 감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따라서 말이다.
 감독은 아무래도 '로맨스'보다는 '혈연에 끌리는 남자'를 더 다루고 싶어했던 것 같다. '스위치'는 일종의 책임에 대해 다루는 영화다. '싱글맘'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했다는 게 바로 여기서 취약점을 찔렀다. '스위치-바꾼다'. 그리고 이 바꿨다는 행위에 책임을 지는 남성. 사실 남성의 책임에 대해, 그리고 월리의 성장에 대해 다루는 영화였을 뿐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탄생'이라기 보다는 '책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 '책임'은, 작위적인 영화의 서사를 더 강화시켜 준다. 사실 월리의 친구 레너드의 경우 이혼을 두세번 정도 한 경력이 있고 여자친구를 아직도 왕성하게 사귀고 있는 이로서 어떤 '책임'의 여부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다. 레너드는 월리에게 이런 저런 충고를 해준다. 레너드의 캐릭터는 영화 서사에서 솔직히 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레너드의 등장 이유는 간단하다. 월리에게 레너드 자신처럼 '살지 말 것'을 당부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레너드는 그냥 술렁술렁, 웃음을 부여하기 위한 요소로만 제시된다. 하지만 어떤 요소가 너무 튀면 영화 전체의 흐름이 망가지는 법이다.


 

 

 다음에 다시 만나요

 

 '스위치'처럼, '싱글맘'에 대해 다룬 영화가 나오기를 바랬다. 하지만 '스위치'는 결국 남성의 최종적인 책임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를 다룬 영화였다. 이는 솔직히 아쉬움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캐시'는 물론 월리에게 화를 내야 한다. 월리는 캐시를 혼란에 빠뜨렸고 캐시가 원하는 아이라기보다는 월리 자신이 원한 아이를 만들었다. 하지만 캐시는 월리가 '세바스찬' 때문에 자신에게 다가오는지 아니면 '캐시' 자신 때문에 다시 다가오는지 알아야 한다. 캐시는 월리에게 고백의 여부를 발견하고 조바심을 내지만 월리의 엉뚱한 대답으로 김이 팍 새고 만다. 이 상황을 보면서 좀 더 재미있어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어랍쇼. 캐시가 월리에게 '결혼하자'고 말하고 승낙까지 한다.
 세바스찬의 액자가 치워진다거나 세바스찬이 좋아하는 유기견 센터의 강아지 사진이 그려진 케이크로 생일 파티를 한다던지 등은 좋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삽화일 뿐이다. 세바스친과 월리는 함께 살면서 무조건 '잘' 맞을 리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월리와 세바스찬 사이의 갈등을 그렸더라면 어땠을까. 무조건 '좋은 관계'로만 이어지는 둘을 보면서 사람들은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롤랜드에게 세바스찬이 냉정하게 대할 때, 이는 솔직히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물론 롤랜드를, 세바스찬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영화의 '심기-거두기', 즉 복선은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 있다. 모든 장치를 다 드러내 보이면 어떤 멋진 타워팰리스라도 순간 멋을 깨는 법이다. '스위치'의 장치들은 너무 많이 그 표면이 드러나 있다. 차라리 그 표면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면 좀 더 나았을 것을.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 많은 '스위치', 제발 다음 번에 나오는 싱글맘 관련 영화는 '주노'처럼 되길 바란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