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블로그에서 바이루피타 앨범이 당첨되었을 때, 나는 무더운 여름을 만끽하고 있었다. 카멜레온처럼 주변 온도에 따라 흐물흐물 녹거나 딱딱하게 굳어버리곤 해서, 음악이 들어갈 틈이라곤 없어 보였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물을 마시고, 시원한 국수를 먹고, 책을 읽고, 공부하고,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너무 더워서 한숨 자고 일어난 다음에 여름이 끝났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이렇게 보낼 순 없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 등 뒤에는 따끔한 자외선이 붙어 다녔다. 결국 집안에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도중, 바이루피타의 음반을 들었다.

예전에 음반을 사 모을 때마다 나는 곡수를 체크해 보곤 했다. 양으로만 따진다는 건 아니지만, 한 앨범에 이 곡들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넣었는가를 가늠해 보았다. 직접 들을 수 없는 만큼, 망설임은 더했다. 아마 바이루피타의 앨범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스페인어로 된 제목, 그리고 왠지 소녀들의 수첩처럼 예쁘게 꾸며진 자켓. 인디 음반이면 족족 사모으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인디가 너무 많이 나온다. 그러나 꽃폭탄이라는 제목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꼭 아르누보의 뮈샤 그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 섬세한 아름다움.

침대에 눕기도 싫어서 바닥에 앉았다. 창문을 열고 바이루피타의 음반을 틀었다. 깊은 산속의 약수처럼 퐁퐁 솟아나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 봄이면 더 화사하게 어울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꽃폭탄들이 색색으로 빛나면서 주변을 물들인다. 마치 드뷔시의 음악처럼 음마다 가볍고 즐겁게 흰 백지 위로 방울방울 떨어지는 이 음악의 그림에,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타이틀곡치고 너무 좋은 거 아냐? 사실 타이틀곡이 좋으면, 앨범의 모든 곡이 좋다. 나는 왠지 호감평을 쓸 것 같다는 불안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She & Him에서 나는 왠지 커플이 되어야 겠다는 진한 염장을 느꼈고 모두가 찬사를 보낸 정철의 불법사전에서 묘한 클리셰를 들춰 보곤 했다. 어쿠스틱 기타 밴드라는 소리에 한 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즐겨 들었던 나로서는 그냥 가볍게 듣고 말아버릴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음색은 너무 좋았다. 귓가를 스치고 가는 상쾌한 음색. 나는 보통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그러면 음악 속에 파묻힌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별로 안 좋은 음악도 우선 파묻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루피타의 음악은, 왠지 모르게 헤드폰을 벗고 이 멜로디를 내가 있는 이 공간 구석구석에 채워 넣고 싶게끔 했다. 'Para los enamorados'는 허스키하지만 시원한 여성 보컬의 노래와 함께 무겁게 얹히지 않고 담백하게 넘어가는 냉면 국물처럼 즐거웠다. 'el amor'는 다른 곡보다 조용했고, 무엇보다 그 여운이 길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가사와 음처리는 사이다처럼 상큼했다. '단잠'은 마치 경복궁역에 있는 모 카페를 떠올리게 했다. 한옥식으로 된 그 카페는 너무 화려하지 않고 단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한낮을 선사해 주는 좋은 곳이다. 그 곳의 배경음악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야금이나 대금 소리가 더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던 그 곳에 말이다. 'No more blues'는 마치 무더운 스페인의 광장처럼 숨가쁘고도 스릴있는 리듬으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에는 이런 모습으로 음반을 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너무 멋있어! 언니! 라고 외쳤을 정도니.

요즘 대중 가요들을 보면 노래 가사는 뒷전이다. 사실, 가사는 그냥 멜로디에 맞춰 쉽고 빠르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면 된다. 인디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식상한 소재에 비슷한 가사가 아닌 각자의 색으로 가사를 염색하기 때문이다. 시가 노래였고 노래가 곧 시였다는 말이, 이 인디와 인디스러운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로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 대중가요들은 가사의 깊이를 음미하는 보컬보다는 무조건 높이 올라가거나 빠른 비트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보컬을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들으면서 휴식보다는 일종의 '노동요'로 느끼게 된다. 얼른 일하고 얼른 노는 게 진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음악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쳐가는 지금 바이루피타 같은, 인스턴트가 아닌 기름기 쫙 뺀 담백한 음악은 어떨까. 쌀쿡수 뚴배퀴 말코 삼켸탕 한그릇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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