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9일 일요일

'꿈의 도시'-오쿠다 히데오의 길고도 짧은 해답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를 봤을 때, 과연 이 작품이 인기를 끌 수 있을까 의심이 들었다. 물론 재미있고 톡톡 튄다. 아무리 무거운 개념과 생과 사의 문제도 공중그네 속의 의사에게는 '공중그네'가 가장 위로 치켜 올라가고 타인의 손을 믿고 잡았을 때처럼 사소한 '믿음'으로 해결된다. 우리 나라에서 일본 작가들의 작품이라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나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와 에쿠니 가오리 등 묘하게 밋밋하고 새침 떠는, 혹은 알 수 없는 외래 문화들을 읊는 문학들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점차 일본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요시다 슈이치와 다른 작가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 중 나타난, 혜성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겐지와 겐이치로' 작품으로 블랙 코미디를 보여준 모 일본 작가만큼이나 오쿠다 히데오도 말빨 하나는 끝내준다. 그는 그 '끝내주는 말빨'로 우울증에 빠져 허덕이는 이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본래 희극의 정의란 '어떤 어리석은 이를 풍자하며 희화화하는 것'이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 희극의 정의에 걸맞는, 뛰어넘는 작품을 보여준다. 그의 소설 속에서는 모든 인물들이 시험대 위에 올려진다. 그 시험대는 어느 누구만을 옹호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그 서사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본다. 단순한 농담 따먹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건 바로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서야, 실컷 웃고 난 뒤에서야 가능하다. 그제서야 우리는 자못 심각하게 '혹시 이거…'라고 의심의 말줄임표를 나열하게 된다. 우리는 오쿠다 히데오에게 '한 방' 먹은 것이다. 오지랖 넓게 오쿠다 히데오의 앞날을 걱정했던 나 또한 마찬가지로 '한 방' 제대로 먹었다. 그는 재빠른 잽과 펀치로 내내 느리게 움직이는 복서들을 쓰러트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의 서사적 위력을 아낌없이 발휘한 작품이 바로 그의 장편소설 '꿈의 도시'다.

 

 

 내 눈을 바라봐 너는 행복해지고

 

 '꿈의 도시'에서는 새롭게 태어나는 '유메노 시'에 이전부터 살아왔던 다섯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며 서술된다. 우선 '유메노 시'로 승격되기를 기다리며 무료함을 느끼는 공무원 아이하라 도모노리, 도쿄에 있는 대학에 합격해 '유메노 시'를 벗어나기를 바라는 구보 후미에, 노인들을 상대로 배전반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가토 유야, 사슈카이 교단에 소속된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마트 보안 요원 호리베 다에코, 조그만 지방 정치가에서 이제 중심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는 야마모토 준이치.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꿈'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행복해질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 도모노리는 '몇 개월 뒤'면 새롭게 다른 부서에 편입될 것이며 좀 더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후미에는 '도쿄에 있는 대학에만 합격하면' 이 구질구질한 도시를 벗어나 멋진 도쿄 여대생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유야는 얼른 'A'등급이 되어 멋진 '페어레디Z' 자동차를 가지고 싶어한다. 준이치는 이제 본 정치로, 다에코는 사슈카이 교단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를. 허나 이들의 욕망은 깨지기 쉽다. 글을 읽는 내내 우리는 작가가 묘하게 비꼬는 어투로 이들의 삶을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심지어는 가장 건실하지는 않지만 건실하다고 느끼는 다에코의 욕망까지도. 왜냐하면 이들은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거짓말은 곧 현실을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방어기제'이자 '방패' 역할을 한다. 우리는 그 방패가 얼마나 연약한 지 알고 있다. 하지만 검과 방패처럼, 방패를 꿰뚫는 검이나 검을 막아내는 방패나 둘 다 '가지가지'하는 것들이다. 결국 공격하는 것도 방어하는 것도 해답이 되지는 않는다. 호리베 다에코는 '유카리'를 끌어들임으로서 사슈카이 교단에 도움이 된 것을, 그리고 유카리를 '구원'해주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가장 두려워 하던 것, 검의 공격을 받는다. 바로 '혼자 죽어가는 것'이다.

 

 다시금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머니도 이렇게 말라비틀어져 죽을까. 갑자기 위가 찌르르하며 구역질이 났다. 아냐, 이렇게 죽는 건 어머니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머지않아 나 또한 피붙이들은 사라지고 돈은 떨어지고 아무도 없이 혼자 죽어갈 것이다.

 

                                                                          -'꿈의 도시' 194P-

 

  하지만 이 검은 또다시 다에코의 방패를 굳건하게 해준다. 베르테르처럼 정수리에 총을 겨누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당기는 순간 세상이 다 끝나 버린다. 후미에도 마찬가지다. 후미에는 그녀를 납치한 '노부히코'의 환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한다. 노부히코에게 죽는 순간 후미에는 후미에로서가 아니라 메일린으로서 죽고 만다. 도모노리 또한 외로운 자신을 극복하기 위해 한 여자의 환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매춘한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합리화한다. 단순히 누군가의 눈을 바라본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는 없다.
 라캉의 상상계는 왜곡된 만화경의 세계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그 만화경 속의 조그만 셀로판 종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 세상이 진리라고 생각하며 돌아간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사실 무언가 꺼림칙한 세계. '꿈의 도시'는 말 그대로 상상계의 도시다. 그리고 이 상상계의 도시는 소설 속에서만 현존하는 게 아니라 서사를 통해 현실로 들어온다. 사슈카이 교단과 만신 교단은 각자 진솔한 듯 보이지만 결국 '다단계' 식으로 속는 이들밖에 없다. 사이비 종교에 관련된 뉴스에서 우리는 이와 같은 사례를 많이 보지 않았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생'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무시'하려고만 했다. 비리와 폭력을 일삼으면서도 자신의 손은 깨끗하기를 바라는 의원, 매사에 무기력한 공무원, 사기를 치면서도 어떻게든 성공하고 싶어하는 남자, 대학에만 가면 뭐든지 다 해결될 거라고 믿는 학생. 어떤가.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가.

 

 

 믿사오며, 믿사오니, 믿니?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오쿠다 히데오는 심술궂게 묻는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이 없으면 살지 못한다. '믿는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만, 동시에 어렵기도 하다. 실제로 우리는 이 소설 속에 나오는 다섯 명을 보라. 그들이 믿는 것은 너무나도 위태로워서 그냥 '툭' 치면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다에코는 그녀가 알고 있던 사슈카이 교단의 면모와는 다른 이면을 보게 되지만, 애써 그 현실을 부정한다. 그녀에게는 '사슈카이'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이 인물들 중 가장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이는 바로 '다에코'였다. 그녀는 만신교를 공격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인 도시락 공장에 방문하지만 얼떨결에 취업하게 된다. 만신교는 또다시 그녀의 새로운 믿음이 될 수 있다. 그녀는 어떻게든 '믿음'으로서, 세상이 좀 더 낫다는 환상에 빠지려고 한다. 사슈카이에서는 가족이고 친구고 다 필요없다고 말하지만 그녀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서, 만신교의 정신으로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보면 이 모든 게 다 같은 것은 아닌가, 그녀는 의심하게 된다.
 유야와 시바타 또한 마찬가지다. 유야는 가장 위에 군림한 사장을 믿는다. 그가 어떻게든 유야의 미래를 책임져 주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의 선배 시바타는 말한다. 언젠가 배선반 사기는 끝나게 되어 있다고. 대신 이불, 시계 등 또 다른 사기칠 거리들을 사장이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어찌 보면 사기칠 항목이 '더'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을 점친다는 건 막막할 뿐이다. 시바타는 그 막막함을 애써 믿으면서 '뱃지'를 달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장은 시바타를 돌아보지 않고, 시바타는 사장을 죽이게 된다. 유야에게 시바타는 '동료'이자 '형'이었고 가족이었다. 그가 흔들리는 모습은 곧 유야의 미래와 일치하고, 그로 인해 유야의 믿음은 흔들리게 된다.
 준이치는 야부타 형제를 '믿는다'. 하지만 야부타 형제는 그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되려 난감한 상황에 빠뜨린다. 준이치는 여성 운동가 사카가미를 구해줌으로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하지만, 야부타 형제는 그녀를 죽이면서 '납치'에서 '살인'으로 일을 더 키운다. 이 믿음들이 흔들리는 장면은 슬프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며 희극적이기도 하다.

 

 준이치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다시 한 번 사카가미에게 손을 내밀었다.
 "크아아~!" 문득 고지가 외쳤다. 야수같은 표정으로 돌진해왔다. "교도소에는 못 가!" 작업용 방한복 호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냈다. 은색의 싸구려 토카레프 총인 것 같았다.
 준이치는 전율했다. 고지가 권총까지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순간적으로 컨테이너 벽에 찰싹 붙었다.
 "고지, 안 돼!"
 게이타가 당황해서 막으려고 했지만 눈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다. 고지가 사카가미 이쿠코를 향해 총을 겨눴다. 준이치는 그 자리에 자지러들었다. 네발로 기어서 컨테이너 밖으로 뛰쳐 나왔다.

 

                                                           -'꿈의 도시' 562P-
 
 오쿠다 히데오는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그려냈다. 이는 일본의 쇼트 스토리의 대가, 호시 신이치만큼이나 경쾌하고 재빠르다. 웃기면서도 이내 뭔가 씁쓸해지고 찜찜해지는, 이 블랙 코미디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믿사오며, 믿사오니, 믿니?' 과연 우리는 제대로 믿고 있는 걸까? 대학을 믿고 승진을 믿고 새로운 사랑을 믿고 종교를 믿고 성공을 믿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과연 물거품처럼 사라지지 않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
 일본 문학을 읽을 때마다 사람들은 '이 이상한 인물이 과연 현실 속 인물에 가까울까'라고 묻는다. 그저 재패니메이션의 인물에 불과하지 않나 의심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믿음이 아무리 터무니없다 하더라도 그 믿음을 차마 거두지 못하는 것, 그게 바로 인간에 더 가깝다는 증거다. 어느 누구도 명료하고 간단하게 자신을 판단할 수는 없다. 심지어 죽는 것을 선택한 베르테르마저도 사실 '실패'의 경우에 속하지 않는가. 그들을 단순히 비웃을 게 아니다. 블랙 코미디의 진면목은 바로 다 읽고 난 뒤, 옆에 있는 거울을 무심코 바라봤을 때 마주친 얼굴에 있다. 과연 우리는 제대로 '믿고' 있는가? 아니, 자신을 믿을 수는 있는가?

 

 

 유.메.노

 

 수많은 간판들 속에 '꿈의 신도시, 유메노'라고 적힌 큼직한 보드가 있었다. '유다', '메카타', '노카타'라는 세 개 읍이 합병해 탄생한 곳이다. 각각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메노 시'가 되었다. 시의 이름에 대해 딱히 반대 운동이 없었던 걸 보면 '유메노'라는 말의 어감이 그리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무코다 군'이라는 역사적인 지명은 아예 묻혀 버렸다.
 
                                                                          -'꿈의 도시' 20P

 

  도모나리의 말마따나 '유메노' 시는 원래 있던 읍 세개를 합쳐서 만들어진 시다. 결국 진실되고 새로운 '꿈'이란 없다. 옛날 것을 꼭 새것처럼 포장해서 내놓을 뿐이다. 마트에서 오래된 물건을 새것마냥 가격표를 붙여 내놓는 것도, 유야와 시바타가 파는 배선반도, 그리고 도모나리가 꿈꾸는 새로운 사랑이란 것도. 도모나리는 매춘 장소에서 자신과 이혼했던 아내와 만난다. 게다가 그를 위협하던 하지메의 트럭도 그를 곤궁에 빠뜨린다. 1+1=2, 무엇과 무엇이 갖추어져야만 행복이다. 이는 어찌 보면 억지로 읍들을 합쳐서 '꿈의 도시'로 작명하게끔 했던 일방적인 '집합'에 불과하다. 이 폭력적인 집합은 다섯 명의 이야기를 한데 묶어내고, 결국 욕망의 끝을 보여준다. 욕망은 결국 스스로 괴멸함으로서 욕망을 이루게 된다. 살아 있는 동안 욕망은 끝이 없게 된다. 오로지 죽음만이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하지메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 이들이 감춰 놓았던 죽음과 현실들이 튀어나와 각자와 대면하고, 그 순간 진정한 '폭발'이 일어난다.


 "조금만 참아요." 낯선 사람들이 격려해 주었다. "구조대 금방 올 거야." "그때까지 정신차리고 견뎌내요." 필사적인 성원이 귀에 와닿았다. 내내 잊고 있던 인간의 다정함이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런 고마움을 좀 더 일찍 느꼈더라면 좋았을 텐데.
 빛이 비쳐들었다. 다에코는 눈을 뜨고 주위를 향해 응응 고개를 끄덕였다.

 

                                                                       -'꿈의 도시' 619P

 

 '폭발'로 인해 진실이 나타난다. 다에코는 여태껏 그녀가 갈구해 왔던 것은 신의 속삭임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후미에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지게 되고, 유야는 내내 숨겨왔던 비밀을 속시원하게 터트리게 되며 도모나리는 니시다 하지메에게서 살아남아 다른 사람을 '제대로' 도울 수 있게 된다. 준이치는 라스콜리니코프마냥 자신의 죄에 쫓겨 도망가게 된다. 그리고 그가 보게 되는 광경은 유메노 시, 그가 위에서 군림하고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도시의 진면목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인도에 통행인은 없었다. 평소에는 울긋불긋 요란하던 간판들도 춥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두 다 회색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이 도시의 색깔인 것만 같았다.

 

                                                                    -'꿈의 도시' 630P

 

회색빛 도시, 흑백으로는 가릴 수 없는 미묘한 도시. 소설의 말미에서야 우리는 '꿈'의 도시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준이치가 명령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만 같았던 그 순탄한 세상은 이제 회색빛으로 가리워져 버린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말미로 자신의 해답을 내놓는다. 630페이지에 다다르는 이 장편 소설은 그 해답을 주기에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다. 오쿠다 히데오의 인물들이 말하듯이 해답은 쉽게 오지 않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단번에 풀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곁에 있으면서도 쉽사리 깨닫지 못하는 것, 그렇기에 가장 어려운 문제의 답인 것이다. 준이치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 해답은 이제 읽는 사람 각자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결국 준이치는, 다른 인물들은 우리들의 또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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