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8월은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색 고운 낙엽과 늦여름의 정취가 묻어나는 저녁을 기대할 법도 하건만, 갑작스런 폭풍 때문에 그마저도 미뤄졌다. 그냥, 여름이었다. 늦여름은 9월에서야 왔다. Lamp의 '8월의 시정'은 '9월의 시정'이 되어버렸다. Lamp의 노력과 목소리가 미뤄진 것이 조금 씁쓸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8월보다 9월이라는 어감이 더 좋지 않은가?
Lamp의 음악을 들은 건 '사랑의 단상' 앨범에서였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여진 목소리들, 그 와중에 끼여 있는 Lamp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허나 일본어? 어쩌면 나는 일종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지도 모르겠다. 음악에는 언어가 없다. 가사는 단지 조금 더 말하고자 하는, 욕심일 뿐. 사실상 멜로디로 모든 세상이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소메야 : 예를 들어 안토니오 카를로스 죠빔은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곡가입니다만, 세계 공통의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라고 말한다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자신의 관점, 자신의 리듬감으로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고 있는 거죠. 거기에 세계 사람들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의식적이냐 무의식적이냐 이런 건 차치하고서라도요.
-Lamp, 인터뷰 中-
글을 쓰는 나로서는 그 멜로디로 소통하는 것이 부러웠다. 미술도 그렇다. 오로지 문학만이, 번역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른 예술과 소통할 수 있다. 이는 어쩌면 문학의 약점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약점. 골방에 틀어박혀서, 다른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순간. 허나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계에 다리가 놓여지면서, 끝과 끝이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나타났다. 노란 머리의 직녀와 검은 머리의 견우가 만날 수 있는 가능성. 소설은 이제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보여주려 한다. 음악 또한 가사로 전달하는 것 외에, 이제 전달하려 한다. Lamp의 시정은 단순히 가사로만 이어지는 시정이 아니다. 이제 음표로, 화음으로 시정이 구성된다.
Lamp는 보사노바와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수많은 음악들을 겹치고 포갠 일본풍의 음악이다. 일본풍이라 하면 왠지 모를 하와이안, 밝고 경쾌하나 동시에 가볍고 몇겹의 멜로디를 겹쳐낸, 어떻게 보면 얇은 천과 천 사이에 오묘하게 띄운 색이 일본풍이라 할 수 있겠다. 허나 일본풍이라고 하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커넥션(접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본와 우리 나라 뿐만이 아니라, 유럽, 티베트, 중국까지. Lamp의 기타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떠오를 정도로 서정적이며 감정이 풍부하게 넘쳐나고, 플루트는 꼭 새소리처럼 클래식한 분위기를 살려주고 있다. 퓨전이되, 너무 과하지 않은 퓨전. 너무 심한 퓨전은 오히려 음악에 부담감을 준다. 배탈이 나는 것이다.
배경에 스며드는 음악, 영화를 찍을 때 유난히 스가 시가오와 Lamp의 음악을 배경음악에 골라 놓곤 했다. Lamp의 음악은 마치 리트머스 종이에 스며드는 요오드처럼 풍경 속에 스며들어 고유한, 너무 튀지 않는 색깔을 낸다. 이야기를 하거나 걸으면서 생각할 때, Lamp의 음악은 당신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흔히 노동요라고 말하는 우리 나라의 가요들은 '빨리' 혹은 '사랑하던가 이별해라'라고 강요하는 반면, Lamp의 음악은 마치 돛단배의 등 뒤를 밀어줄 뿐, 그 진로는 결정하지 않는 산들바람 같다. Lamp의 음악이 우리 나라, 그리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앨범에 참여하게 된 건 우연이 아니다. 다른 비슷한 풍의 음악도 있지 않느냐고? 허나 Lamp의 음악은 너무 앵앵대지도 않고, 너무 우울하게 되지도 않으며 너무 가볍지도 않다.
그런 만큼 Lamp의 음악은 어느 계절 할 것 없이 다 맞는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사람에게든 가만히 스며들어 포근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조금 낯간지러울 지도 모르겠다. 허나 기타의 스트로크는 너무나도 경쾌하고, 플루트는 깊고 고요하게 가라앉았다가 높이 날아오른다. Lamp의 색은 그러면 무색일까? 아니, 나한테 이 앨범의 색은 수줍은 주홍빛도, 노란빛도 아닌 먹오딧빛이다. Lamp의 음악은 투명하게 모든 상황을 비추면서도 이내 진하게 가라앉아,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숨을 바로 하게 한다. 왜 서정주의 시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우리는 주변의 모든 사물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서로 소통하려는 두 예술이 만나는 순간 수많은 불꽃놀이들이 터진다. Lamp의 먹오딧빛 하늘 위로 우리는 수많은 우리의 추억들로, 수놓는 것이다. 아름답게.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 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면 날마다 칠해져 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에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전문-
나는 굳이 Lamp의 8월의 시정만 들으라고 추천하지는 않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Lamp의 곡은 바로 雨降る夜の向こう(비 오는 밤의 저편)이다. 특출나게 음악 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다. 허나 감성만으로 접근할,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관심이 간다면 좀 더 공부할 수도 있을 사람들을 위해 리뷰를 이렇게 썼다. Lamp의 음악은 4집 이전에는 투명했고, 그 이후로 점점 깊어져서 먹오딧빛이 되었다. 모든 것을 아른아른하게 비추면서, 자신들의 속내를 깊은 곳부터 우러내는. '8월의 시정'은 애달픈 순간들을 그려낸다. 더운가 하면 추워지는 이 환절기에, 그리고 마지막 수박을 먹는 여름의 옷자락 끝에 우리는 이 음악으로 거리를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예감케해주는 계절, 너를 만났다'라는 가사가 맘에 들었다고 말하는 건 과언이 아니다. 배경에 스며들 만한 음악이라고 한 것은 단순히 가사가 우리 나라 가사가 아니라는 것만은 아니다. 일본 가사도 마치 시처럼 조용히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지 않은가. 이리와, 안아줄게. 이 세상 끝까지.
미지근한 비가 주위를 다정하게 두드리니
마지막 계절이 너울거리고 있었다
-Lamp, 8월의 시정 중-
너울거리는 마지막 계절, 추억의 마지막 계절이다. 이별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만남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이 모든 계절에 시정을 느끼길 바란다. 저물어가는 초록빛 노을 끝에서, 주홍빛 얼굴로 끝없는 감기에 걸려, 시정을 훌쩍거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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