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일 화요일

꼰대 의식

 

 

 어제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게 되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넋놓고 헛소리도 할 수 있었고. 후쿠야에서 맛있는 튀김 정식을 먹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홍대 쪽 이스뜨와르 당쥬를 찾던 도중 케익이 많은 스노브로 가기로 했고, 그러던 중 파이가게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파이 가게 안은 적당히 따뜻했다. 후덥지근해서 들어오자마자 왠지 모르게 눈이 감길, 그 정도의 온도가 그리웠지만 꾸벅꾸벅 조는 것보단 이야기하는 게 낫겠거니. 싶었다. 진열장 안 파이는 곳곳에 이름표를 달고 예쁘게 피어 있었다. 종류도 많았고. 들여다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고. 그 간극을 뼈저리게 느꼈다. 파이는 별로 맛이 없었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냉동쇼트케익보다는. 이렇게 나쁜 인상으로 남은 것은 어쩌면 그 카페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떤 공간을 어떤 의미로 인지하는가,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는가는 어쩌면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나 일어날 법한 일을 연상케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저번에 읽었던 도시 건축 디자인 책에서는 광주와 부산, 인천 등 각각 지역 도시를 나누어 분석하면서 그 도시의 경험과 역사, 사는 사람들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그 공간만의 고유성을 개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의 빵틀에 찍혀 나오는,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등함보단 말이다. 사실 저 평등함은 가면에 불과하다. 가면 속에는 평등함이란 없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나는 그간 궁금했고 고민했던, 그러나 쉬이 말하지 못했던 일을 꺼내 놓았다. 나는 우익인지 좌익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 정권이 우익을 표방하고 있는 지금, 예술은 선명하게 좌익을 드러낸다. 우파 예술인도 있을텐데, 왜 좌파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그러나 좌익 정권이 있었던 나라의 예술에서는 우익의 색이 강했다. 어떻게 본다면, 예술 자체는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이고 수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익과 좌익은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싸울 게 아니라, 일종의 반대되는 것으로써 중립을 이뤄야 할, 그런 다른 시점이 아닐까. 그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연 찰나, 나는 옆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의 충고를 들어야 했다. 아주머니는 예술이란 혁명이고, 그렇기 때문에...뭐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사실 그 말의 반도 귀담아 듣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요즘 상황 자체가 진저리가 난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하는 훈계도 지겹고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는 사람 앞에서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느니 애초부터 서서 간다. 그렇게 서서 가다 보면, 누군가가 자리를 권해주기도 한다. 학생, 책이 많네. 좀 앉아. 그러면 나는 단순하게 아니예요. 할머니 앉으세요. 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착한 학생이 되고 만다. 사실 처음부터 나쁘다는 시선 자체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뿐인데도.

 

 고등학교 때에는 나보다 한두살 많은 사람들에게 훈계를 듣는다는 것, 기합을 받는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새 보니 후배들을 보며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랐고 혐오가 들끓어 올랐다. 그래서 아예 말을 놓았으면, 싶었다. 무의식 중에는 아직도 그에 반발하는 감정이 있지만.

 

 인간이란 이성이 있고, 또 감성이 있기에 성립되는 '동물종'이 아닌가 싶다. 디오니소스적 감성은 무절제, 충동이라지만 사실은 숭고에 가까워지려는 것에 불과하다. 몇몇은 이를 잘못 생각해 '방종'으로 치닫는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인, 손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 그 무언가에 다가가기 위해 몸을 깎고, 깎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꼰대' 의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꼰대'를 혐오한다는 것, 은 그저 나에게 뭐라고 충고를 하는 사람-그 사람이 옳든 틀리든-이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 혹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텃세를 부리는 것밖에 되질 않는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꼰대'를 듣고선 강의를 들어보라고 추천했다. 좋은 의견이다. 친한 사람들의 말은 곧잘 받아들이는 내가 왜 그 아주머니의 말은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사실은 아는 일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