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아이...러브(LOVE)라는 말이 붙어 있어도 KING보다 무섭다니. 전제왕권을 위협하는 아이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러브는 저 러브가 아니지만. 내가 러브크래프트를 알게 된 것은 잡지 판타스틱의 단편에 나오는, 조금 소심하고 조금 이상한 러브크래프트 덕분이었다. 그 때에는 조금 이상한 놈이로군...싶었는데 지금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고 나선...덕질도 정도껏. 환상도 정도껏.
사실 나는 공포소설을 잘 못 읽는다. 잘 못 읽는다는 건 자세하게 못 읽는다는 것이다. 사건 전개만 알아야지 싶어 휙휙 넘기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초등학교 때 나온 공포소설 중 인상깊었던 게 있는데 여자가 차 뒤꽁무니에 거꾸로 매달려서 미친 듯이 웃는...아...그래. 그래도 요즘엔 스티븐 킹을 재미나게 읽는다. 오히려 코맥 맥카시의 그 로드가 더 공포 소설이 아닌가 하고 천연덕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러브크래프트를 읽은 뒤, 나는 한동안 공포소설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선 러브크래프트는 한참 오래전에 쓴 작가이고, 타계하셨다. 내가 읽은 소설은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 이 작품, 꽤 무섭다. 물론, 어떻게 보면 옛날 좀비 영화의 공식인 어떤 마을을 방문했다->좀비가 나타났다->꺅 이 공식과 비슷하기도 하다. 허나 러브크래프트는 다르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끝까지 맨정신을 유지하다가 살아남거나 조금 후유증이 있어도 어쨌거나 살아남거나 혹은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죽거나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끝난다.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한 남자가 그림을 그리다가 그 그림 때문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그 남자는 산다. 샤이닝에서 작가는 죽지만 그 아내와 아이는 산다. 물론, 그의 단편집 중에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거나 재미있게 읽었다고 생각되는 글들은 다 그런 레파토리다.
또한, 공포의 정체는 쉬이 밝혀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공포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 자체가 품위없는 행동이라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포란 일종의 그림자로, 자세히 보기 위해 빛을 비추면 사라진다. 그럴만큼, 공포는 하찮은 존재로 느껴진다.
허나 러브크래프트의 공포는 그 맛부터가 다르다.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은 마을을 탐사하던 도중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도망치는 데에 성공하나, 결국 자신이 그 종족의 일원이었음을 깨닫고 자신도 그 공포에 흡수되어 가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는 감정이입을 충실하게 하는 양과 같은 독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이 공포는 샅샅히 파헤쳐 그 끝을 보여준다. 물론 그 끝은 종교와 같은 것이지만. 이는 빛을 비춰도 사라지지 않는 괴물을 보여준다. 괴물은 사라지지 않고 눈을 껌벅거리며 당신의 빈틈을 파고 들어올 순간을 노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눈에나 보이지 않는다면 다행이지. 눈에 보이는 공포는 살아 있는 것이고, 그 살아 있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위협 혹은 죽음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 텔레비전 화면 안에서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할 지 몰라 나는 두렵다. 손전등으로 비춰보고 싶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까봐,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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