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1일 화요일

이 책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의 저자 케빈 더튼은 책 제목만큼이나 자신 또한 설득에 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와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보면 전혀 상관없을 수도 있는 제 3자인 친구가 어떻게 풀었는지, 그 마법같은 순간을 말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나도 당신들처럼 설득을 당한 적이 있다. 이건 그가 말했던 일종의 '눈높이 맞추기', '공감성 획득'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공통 키워드는 '공감성'이다. 우리가 공감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순간, 모든 설득은 다 무로 돌아가버리고 만다. 물론, 위협도 있다. 허나 스톡홀름 신드롬을 보라. 어떻게 범죄자가 피해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가?
 우리가 생각하는 허를 찌르는 것,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이 사람이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경찰이 자살하려던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자고 청하는 방법이 어떤가에 따라 그 사람에게 '나는 당신에게 공감할 수 있다'는 표시를 취할 수도 있고, 취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그저 직장인들, 협상을 자주 하는 직장인들에게나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리한 아이들은 어른도 꼼짝 못 하게 만든다. 12월 마지막 날 친구 집에서 열린 송년파티에 참석했을 때였다. 그 친구가 아홉살짜리 아들에게 자러 가라고 하자 아이가 사정했다.
 "엄마, 8시 반밖에 안 됐는데 조금만 더 놀게 해 줘요."
 하지만 친구는 단호했다.
 "너 밤에 늦게 자면 다음에 어떤지 알잖아. 며칠 동안 피곤하잖아."
그러자 그 아이는 금방 이렇게 대꾸했다.
 "그럼 내일 엄마가 자고 있는데 아침 7시부터 뛰어다니면 좋겠어요?"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 中-

 

 케빈 달튼은 서양인이고, 우리는 동양인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부장적인 권위가 강한 한국인이다. 저런 말을 한다면 아마 백퍼센트 맞지 않을까 싶다. 영국과 미국의 코미디 드라마와 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 저런 경우로 대본이 짜여져 있다. 묘하게 허를 찌르면서도 사람들에게 너무 불쾌하지 않게 절제를 한다. 사실 절제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그래서인지 드라마의 수위는 높고 다양한 소재들을 마음껏 사용하며, 프로그램들은 성적소수자와 그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비꼬면서 동시에 똑같은 인간으로 전락시킨다. 우리 나라가 예의가 바르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영국을 보라. 영국은 신사의 나라지만, 그 나라의 SNL이라는 프로그램은 코미디의 대가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내가 이 나라를 까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허나 개그콘서트나 웃찾사같은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이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다. 정치인이 개그 프로그램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동혁이형은 너무 직설적이었다. 허나 그 직설적인 게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일종의 의외성이었고 그 의외성에 타격을 받은 정치인들은 저도 모르게 '프로그램'에 시비를 걸게 된 것이다. 찔리는 놈이면 제가 먼저 자수를 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젝의 책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라는 책에서 보면 우리는 우선 진지함에 속고 그 다음에는 희극에 찔린다. 햄릿이 사느냐 죽느냐를 외칠 때 한여름밤의 꿈속 요정인 퍽은 우리에게 모든 걸 잊어버리고 정신차리고 똑바로 살라고 날카로운 충고를 던진다.

 

 

 

 이 책에서는 그 날카로운 충고를 잊지 않고 말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달콤한 말로 이들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모든 게 다 뜻대로 이뤄질 것이라는 거짓말을 하지만, 실상 그 책들의 공통된 모토는 다 이거다. 노력해라. 노력하지 말라는 책이 있다면 그 책이야 말로 읽을만한 책이다. 저자는 자기계발서에 관해서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가 말한 '설득의 방법' 중 자기계발서의 방침이 있다. 바로 아래로 낮추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는 공감을 하거나 아래로 낮추는 게 우선이다. 읽는 독자에게 이들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표지에 박아 보여주고 첫장을 펼치면 그들이 독자들보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책보를 매고 학교에 얼마나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는지. 그리고 자기가 비행청소년이었거나 타락한 적이 있었다는 것도. 그러면 사람들은 '내가 이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케빈 달튼이 '상사에게 단 한번도 해를 입지 않은 남자'에 대해 서술했던 것 그대로다. 아주 아래에 처박혀서 너보다 못한 벼룩과 빈대와 같은 존재였고, 그래서 당신들은 당연히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건 바로 '사이코패스'에 관한 글이었다. 우리는 보통 사이코패스라 하면 국가에 특정한 관리를 받거나 범죄자로 치닫기 일쑤라고 생각한다. 허나 어떻게 보면 우리가 바라는 신은. 바로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고, 흔들리게 한다. 당연히 우리의 믿음은 부서져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되는 것에 의해 자신을 쉽게 내버리고 절벽으로 던져버린다. 달튼의 친구 '폴'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저 사람도 다른 사람이나 다름없이, 어떤 한 방향으로 가는 순간 타인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의 카드에는 조커가 없다. 허나 저들은 우리의 손에 조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조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커의 존재조차 모른다.

 

 

 달튼은 그가 '사이코패스'와 직면했을 때, 얼마나 큰 감정의 기복을 느꼈는지 말한다. 이 혐오는 르네 지라르의 '폭력과 성스러움'처럼 대치되는 '숭배'와 한 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사람들은 음모론으로 치부하지만 우리는 계속 설득당하지 않기 위해 묻고 물으면서 나아가야 한다. 이 책의 제목대로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은 그 방법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 속을 예리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시선, 그 시선의 획득을 요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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