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0일 월요일

죽은 자가 무슨 말을?

 

 

 자루

 

                         문태준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

 

 초봄 뱀눈 같은 싸락눈 내리는 밤 볍씨 한 자루를 꿔 돌아오던 家長이 있었다 그 발자국 소리를 듣고 일어나면 나는 난생처음 내가 작은댁의 자궁에서 자라난 것을 알게 된 것처럼 입이 뾰족한 들쥐처럼 서러워서 아버지, 아버지 내 몸이 무러워요 내 몸이 무러워요 벌써 서른 해 전의 일이오나 자루는 나를 이 새벽까지 깨워 나는 이 세상에 내가 꿔온 영원을 생각하오니

 

(중략)

 

 

 

 

 왜 문태준의 시를 읽다가 저 첫 문구 '자루는 뭘 담아도 슬픈 무게로 있다'는 말이 와 닿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문학적 재능도 없고 묘사력도 없고 있는 건 그저 막장 스토리를 지어내는 것밖에 없으나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을 담든 간에 내 자루는 남에게 꿔온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친구는 나에게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정의에 대해 물었다. 나는 친구에게 이것저것 대답했지만 사실 친구의 말도 내 말도 그저 공기 속에 떠다니는 세포들처럼 다른 누군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다가가더라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재능을 달라고 했다. 허나 나도 재능이 없다. 그녀에게 줄 재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 재능이라곤 그저 뭐 하나 없이 읽어내려가는 것밖에 없다. 그녀에게 한 말마따나 나는 내가 40세 이후로 어떻게 살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예전 무당집 아들은 그런 생각을 하다간 단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는 단명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장수하는 것만큼 두려운 게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은 자기파괴욕구를 키우는 게 아니라 천천히 그 괴물에게 삼켜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저 쓴다.

 그것밖에 할 수 없으므로.

 그게 나쁜지 안 나쁜지는 나중에 가서 알 일이지만

 그 결과를 보기 두려워해 자살한 이들은 과연 지금쯤 행복할지 아니면 그저 썩어들어갈지

 딕슨 카의 소설처럼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하겠냐고 빈정거리고 있을런지

 

 

 선배 저는 거울같은 사람이예요 선배가 저를 미워하면 저도 선배를 미워하고 선배가 저를 좋아하면 저도 선배를 좋아하고 그래서 저는 선배한테 더이상 줄게 없죠 왜냐하면 받은 선물을 도로 돌려주니까요 그러니까 저한테 대고 백설공주를 죽일 방법을 물어보신다면 그 말밖에 할 게 없어요 죽이라는 그 말밖엔

 

 담은 게 없어서 슬프다. 내 자루에는 아무래도 구멍이 뚫려있는 모양이다. 이자는 점점 쌓이고 쌓여 나는 곧 있으면 사채업자들한테 쫓기는 신세가 될 것 같다. 학교 선배는 뚱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그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안다. 내 말마따나 나는 거울같은 사람이었다. 호의를 호의로 답했고 적의를 적의로 답한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질 못하고,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이를 들어 외동딸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이라 했지만 이상하지, 어렸을 적의 나는 다른 사람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붙이고 친구가 되곤 했는데.

 

 언니 왜 눈에 그렇게 떡칠을 해요?

 친절해 보일까봐

 

 금자씨의 두려움을 알게 되고 나니 이제 내 앞에 있는 건 두려운 것들 뿐. 친구야. 쓰지 않고 말하는 건 어떻게 보면 위선이고 슬픈 아리아야. 혼자 부르는 아리아. 그런데 끝에는 도돌이표만 있을 뿐 마침표가 없어. 우린 그냥 써야해. 쳇바퀴의 나사가 헐거워질 때까지.

 

 

 아버지는 내가 정치의 개좆도 모르면서 정치에 관해 논하는 게 어이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사실 저는 정치가 개좆보다 더 싫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정치없는 세상은 없을까요?

 

 정치라는 의미는 왜 그렇게 변질되어 버린 걸까. 어떻게 보면 정치가 하나의 분야로 나왔을 때부터 더러워지는 게 당연하다는, 그런 관례를 따르게 된 것 같다. 순수한 유니콘의 성처녀는 미아리 고개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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