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일 일요일

친구 페니와의 관계에 바치는 서문


 펜은 노동을 하기 위한 도구들 중 가장 가벼우면서도 무거운, 모순적인 존재다. 말은 내뱉은 순간 주워 담을 수 없다. 펜으로 쓰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아마 수많은 작가들이 그 펜에 달려 있는 무게를 이겨내면서 명작을 써냈으리라. 그러지 못한 작가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을 차마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쉽다고 한다. 그렇다. 글은 원래 배설된 존재다. 정신과에서는 치료 목적으로 사람들에게 일기를 쓰게 한다. 평소에 말하지 못했던 것, 그들의 무의식에 잠겨 있는 것 모두를 쓰게 한다. 그로서 우리는 우리가 외면하고 기피해 왔던 정체불명의 무언가와 맞부닥치게 된다. 허나 그건 자신에게만 국한된 배설일 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 위해, 사람들은 급급히 의사소통을 하는 법을 익힌다. 허나 글쓰기=배설로 일컬어졌던, 화장실 구석에서 혼자 틀어박혀 꼼지락거리는 손가락에 붙잡혀, 사람들은 제대로 된 작품을 써내지 못한다. 그 손가락을 풀어내는 과정, 그게 어쩌면 글쓰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문학에 대해서 배우고 배울수록 알게 되는 것은 글은 쉬이 내뱉을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배설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말은 잘못 들으면 다 비워내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그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옆에 갇혀 있는 죄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숟가락으로 딱딱한 암벽을 후벼파는 몬테크리스토 백작과 더 가까운 말이다. 하나 하나 읽고 그 의미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무게는 점점 무거워진다. 허나 이상하게도, '라이트'한 소설들이 더 많이 쏟아져 나온다. 요즘에는. 왜 그럴까 싶었는데 단순히 내려찍는 것 하나만으로도 글씨를 탄생시킬 수 있는 컴퓨터라는 존재가 태어났다.
 통신문학이 발달하고 유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제 손으로 쓴 글을 읽을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말대로, 편지들은 사라지고 서류에는 사인 말고는 육필이 없어졌다. 글씨로 사람의 인격을 판단한다는 예전 말은 이제 다 허사가 되어버렸다. 컴퓨터 안의 글씨체는 한정되어 있고, 그 글씨체들은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타인에게 충분히 읽힐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아주 쉬운 것으로 치부해버리게 되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이러니컬하게도 진정한 의사소통은 줄어들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편지에 집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의 생일 때마다 어떻게든 편지를 써서 줬다. 편지지가 없다면 선물 귀퉁이에라도. 그 당시에는 고마웠을지도 모르나 그 친구는 나중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대체 이 편지들은 뭐지? 그 친구에게 적으면 세장, 많으면 다섯장의 편지를 쓰곤 했으니 말이다. 편지에는 그 친구에 대한 내 생각과 제대로 와닿을 수 없었던 부분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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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쓰기 위한 펜'이 필요했다. 물론 나도 글을 대부분 컴퓨터로 쓰는 편이다. 손으로 쓰노라면 한시간 동안 써야 할 것을 두시간에 걸쳐 쓰게 된다. 게다가 쓰다가 고치고, 쓰다가 고치고. 결국 제자리걸음만 몇번씩 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위드블로그에서 '파카 벡터 만국기 수성펜'을 받았다.
 마치 만국박람회가 다시 열린다면, 거기에 기념품으로 나올법한 펜을 들고 나는 한참동안 망설였다. 그 이유인즉슨.
 어디가 뚜껑이지?
 누구보다 단호하게 잡아빼야 했다. 돌리면 전부 다 빠졌다. 분해 과정을 리뷰로 써야 하나, 망설이다가 공책을 폈다.
 

 

 


 학교에서 빌려와서 읽고 있던 척 팔라닉의 '질식' 중 맘에 드는 부분을 옮겨 적었다.

 

 "혹시 이런 고대 그리스 여자 알아요?" 페이지가 말한다.

 잃어버린 애인의 윤곽을 그렸다는 여자 말인가요? 알아요. 내가 대답한다.

 "그럼 그녀가 결국 애인을 잊고 벽지를 발명했다는 사실도 알겠네요."

 섬뜩하지만 우리는, 순례자이자 이 시대의 괴짜들인 우리는 이렇게 우리만의 뒤틀린 현실을 바로 세우려고 애쓰는 중이다. 돌과 대혼란으로 세상을 일으키려 애쓰는 것이다.

 무엇이 될지는 나도 모른다.

 

 

 

                                                   

 

 리뷰다운 말을 해보자. 파카 수성펜은 우선 굉장히 부드럽다. 처음에는 살짝 뻑뻑하다 싶었는데, 두 글자쯤 가자 마치 물뱀처럼 종이 위를 거침없이 미끄러져 나간다. 매력적이었다. 사실 살짝 졸렸던 참이었는데 잠이 깼다. 참, 글은 못 쓰면서도 필기구에는 민감하다니. 쥘 때 편안하고 쓸데없이 걸리적거리지 않고, 잘 나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까다로운 손이었다. 300원 400원짜리 필기구라도 손에 맞는 걸 골랐다. 아버지 친구분이 선물이라고 주신 만년필은 너무 좋았지만 살짝 걸리는 면이 있었다. 팬시 용품으로 파는 펜들은 너무 날카로웠고, 만년필은 너무 뭉툭했다. 하지만 파카 벡터 수성펜은 조금 미묘했다. 날카로운 듯하면서도 거침없이 흘러나간다.

 

 우리가 쓰는 것에 조금 더 책임을 느끼기 위해서, 펜을 고르는 순간부터 그 펜이 쓰여질 노트까지. 하염없이 뒤적이고 써보면서. 그게 무슨 용도든 간에. 문방구 펜 코너에 비치된 연습장들에 쓰여진 조그만 메모들과 무책임한 선들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오랜만에 좋은 펜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글쓰는 것도 잘 흘러갔으면 좋으련만? 맘에 맞는 필기구 친구를 사귀었으니 좋은 글도 함께 써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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