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0일 수요일

정말

 

 도심 속에 산다는 건, 어쩔 때는 진저리나고 어쩔 때는 부러운 일인 것 같다. 물론 나는 도심 가까이에 살아본 적이 거의 없다. 한 2년 정도.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한다. 집 근처에 조그만 카페나 커피숍이 있다면 가서 커피도 마시고, 편한 의자에서 책도 읽고 따뜻하고 나른한 그 공기에 취해 조용히 고개를 꾸벅꾸벅 숙여 보고 싶다고. 예전엔 이런 걸 뉴요커라고 비웃었지만 요즘엔 차라리 그렇게 불려도 좋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벅스 톨 사이즈를 들고 다니진 못해도 그냥 좋아하는 카페에서, 조용한 그 곳에 앉아 글도 쓰고 다른 사람도 구경하고 책도 읽고. 솔직히 카페는 정말로 편한 사람 아니면 같이 못 가는 성격이다. 간다 해도 오래 앉아 있질 못한다. 편한 사람과 있다 보면 저절로 이야기가 술술 풀려 나오거나 저절로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뜬금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말야.

 

 가장 좋아하는 카페는 대학로 구석에 있는 The Table, 사람들이 얼마 찾질 않는다. 오렌지 쿠키를 굽는 그 향도 기가 막히거니와 커피도 맛있다. 물론 비싸다. 게다가 좀 멀다. 그래서 자주 찾진 않는다. 아주 가끔, 대학로 근처에 연극을 보러 올 때면 동행들을 졸라서 가곤 하지만 그 동행들은 대부분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그래서 그 분위기를 다 즐기기도 전에 나올 때가 많다. 매번 아쉬울 따름.

 

 내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인 회룡역 쪽에도 카페가 하나 있다. MOMO라는 카페인데, 나는 그 카페가 생긴 이후로 2년이 넘게 한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왠지 커피도 그닥 맛있을 것 같지 않았고, 그 기대치에 비해 가격은 2500원, 그저 그랬다. 차라리 요거프레소에 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거프레소는 유모차를 끌고 온 아주머니 부대가 점령하는 일이 허다했고 결국 몇주일 전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 넷북을 들고 도망치듯 MOMO로 왔다. 그런데 이게 왠 일, 갓 구워낸 와플도 맛있고 생크림도 담백하고 커피도 맛있다.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넷북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고, 카운터의 언니는 손님을 힐끔힐끔 쳐다보지도 않고 신경쓰지도 않는다. 신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긴 에스프레소는 안 한다. 아메리카노는 하면서. 씁쓸하네.

 

 홍대 쪽에선 포에니를 좋아했지만 이번에 인테리어가 바뀐 게 맘에 들지가 않는다. 그린빈은 어떻게 보면 홍대에서 싸고 오랫동안 눈치 보지 않고 있을 수 있는 곳이고. 어떻게 보면 홍대는 갈만한 카페가 마뜩찮은 편이다. 카페는 많지만.

 

 

 

 요즘에 내가 눈독들이고 있는 곳은 종로의 다동 커피집. 4000원이라는 가격에 리필도 할 수 있고, 편한 분위기라고 한다. 게다가 따로 사이드메뉴가 없는 터라 외부 음식도 반입 가능. 천국이네. 어차피 학교 다니면 종로 쪽은 많이 다니게 될 터인데 거기 가서 한번 기지개를 펴 볼까.

 

 

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의 암스테르담과 체실 비치에서를 읽고 있다. 원래 읽었던 작품이었지만 그건 학기 중이었고, 마치 인스턴트 식품을 먹듯 성의없게 봤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부끄럽고 즐거웠다.

 

 어제는 저작권 등록증을 제출하기 위해 디지털미디어시티라는, 월드컵경기장 역 근처에 있는 곳에 다녀왔다. 꼭 메트로폴리스같은 풍경이. 짙푸른빛 유리로 덮인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었고, 아파트는 몇 채 되질 않았으며 길거리에 사람은 몇 보이질 않았다. 그나마 점심 시간에 건물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걸 봤을 뿐. 한국영상자료원의 자료실에 들어갔는데 별로. 그림책들이 보고 싶었지만 도서관 책장이 이동식, 잡아 끌면 기분 나쁜-비틀린 소리가 나서 질겁을 했다. 결국 본 건 캔디캔디. 소박하다. 영상자료 목록이 보고 싶었지만 왠지 사람 하나 없는, 묘한 세기말적인 분위기에 퇴실 시간을 적어 놓고 재빨리 튀어 나왔다. 내 뒤에선 어떤 남자애가 탁자에 앉아 닌텐도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닌텐도를 설마 여기서 빌린 건 아니겠지.

 

 그 다음엔 종로 1가로 오는 버스를 탔다. 명동에서 약속이 있었다. 아우터 두 벌을 사도 만나기로 한 언니는 오질 않았다. 결국 점저를 먹은 셈이다. 그리고 신나게 쏘다니다가 크리스피 크림에 들어갔다.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커피만 마시기엔 심심하지 않냐는 언니의 말에 오리지널을 하나 시켰다. 너무 달아서 속이 니글거렸다. 크림스파게티를 먹은 다음 도넛을 먹는 건 이제 치사행위에 가깝다. 그것도 크리스피. 미스터 도넛이라면 엔젤 크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겨레 21을 샀고, 이번 호에는 설날 특집으로 퀴즈 풀이 축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도 사소한 부사 하나 때문에 스스로가 진저리 난다는 게 싫다. 여튼 그 문제 답이 어떤 것일지 고민을 하면서도 생각난 것, 과연 이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까? 어차피 학기가 시작되면 무료해지진 않겠지. 이 순간이 그리울지도. 모르겠구나. 더워서 속에 입고 있던 자켓 하나를 벗었다. 이제 봄이 온다.

2010년 2월 4일 목요일

그리고 이젠

 중학교 3학년, 네이버 블로그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방문자 수가 소소하게 올라가는 것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웃도 만들고, 낯선 사람의 포스팅에 거리낌없이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올라가자 점점 아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댓글을 남기거나 방명록을 남기면 왠지 기피하게 되었고, 대학교에 올라가자 이젠 아는 사람 중에서도 몇몇 아니면 블로그 주소를 알려주는 게 꺼려졌다. 전화번호를 바꿨을 때도 그랬다. 몇몇에게는 자연스레 연락을 했지만 몇몇에게는 연락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트릭스터-영원한 방랑자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나는 나카자와 신이치가 쓴 트릭스터라는 개념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단순히 인간에 한정지어 트릭스터를 평가하고 있는데 기존 원시 신화에서 까마귀의 실수가 트릭스터였다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정의가 더 인상깊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보면 운명적인 요소, 곧게 펼쳐진 직선 위를 걸어가던 도중에 누군가가 가위로 그 선을 끊어놔서 걸어가던 사람이 떨어지고, 앨리스와 같은 모험을 하게 된다던지. 그런 게 트릭스터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럴까. 첫부분을 읽고선 더 이상 읽을 마음이 안 든다.

 이번에 자음과 모음 잡지에 한윤형 씨의 글이 실린 것을 봤다. 반가웠다. 예전 대학내일에서 같은 란의 필자로 있었지만 한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고, 그저 그 분이 낸 책만 보고 블로그에 댓글만 남겼더랬다. 난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밝히는 사람, 틀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사람이 좋다. 그게 가장 힘들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 한 여고생이 납치당한 줄 알았는데 잠적했었더라는 이야기, 그리고 그 잠적은 꽤나 충격적이었다는 리포터의 말을 들었다. 학교 생활에 딱히 문제도 없는데, 왜 그랬냐는 의문이 떠돌았지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단순히 탈출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다시 살 수 없다는 두려움, 그 때문에 그 아이는 도망쳤던 게 아닐까. 그리고 다시 시작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뭔가 잘못되었다는 그 인식은, 본인이 아니고서야 또렷하게 알아볼 수가 없다.

 이준익 감독을 예전에는 참 좋아했었더랬다. 물론, 내가 좋아하던 모 배우가 거기에 연산군 역할로도 나오고 백수 아저씨 역할로도 나오고...그러나 윤영선 극작가를 알게 된 이후로는 영 꺼림칙하다. 윤영선 극작가의 작품과, 유고작을 상연하던 건물의 초라한 모습이 눈 앞에 아른거린다. 한 마디 한 마디마다, 혼신을 다해 쓴 그 모습. 표절이란 한 사람의 목울대를 짓밟는다. 다시는 울지 못하도록.

 김이환의 '절망의 구'를 읽었다. 처음에는 검은 구...이러고만 말았는데 확실히 이야기꾼답다. 그러나 좀 더, 좀 더 끝부분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 왠지 사형장으로의 초대가 떠오르더라. 하지만 친친나트는 죽었고, 주인공은 살아남았다.

 스티븐 킹의 다크 타워 1권과 2권을 읽었는데 3권이 너무 읽고 싶다. 그런데 도서관까지 가려면 걸어야 하는데 오늘 발수술을 받고 왔다. 오는 길에 걸을 수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돈이 모자라서 결국 내려서 걸었다. 어머니가 전화를 걸었지만 받질 못했다. 집에 와서 화를 내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다가 결국 내가 화를 내고 말았다. 아프다고! 그러자 어머니는 잠잠해지셨다. 허나 영 찜찜하다. 어떻게 보면 난 참을 수 있지 않았나. 치료비를 내는 건 어머니고, 택시비를 내는 내 용돈을 주신 것도 어머니다.

 

 모차르트 소개글을 쓰다 보니 엘비라 마디간이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뭐...나갈 수도 없고.

 배고픈데. 밖에 과자는 있는데 안 당긴다. 무슨 감자랑 밀가루랑 섞었다는데 감자라면 고등학교 때 무슨 고아원 급식처럼 나눠준 감자빵 때문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 바로 나다. 카레에 있는 감자도 꺼림칙하고, 좋아하는 게 있다면 감자전 뿐?

 아포가토 먹고 싶다. 커피나...병원 옆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맥커피 한잔 사 마셨는데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아침, 일찍 맥도날드에 가면 정말 좋은 맥커피를 마실 수 있다.

희한하게도

 

 

 여기 주소를 알려준 사람이 한 명밖에 없는데도 방문자 수가 는다.

 뭐지? 여기가 검색에 걸리나?

 궁금하니 방문자 분들은 가능하다면 짧은 광고글이라도 남겨주시길. 여기에.

2010년 2월 2일 화요일

총장님, 거긴 학교 홈페이지고요. 네 미니홈피가 아니잖아요.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희망찬 2010년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먼저 올 한 해 열심히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제37대 총학생회에 진심으로 격려의 뜻을 전합니다. 총학생회를 비롯하여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지난 수년간 다방면에 걸쳐 눈부신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며, 영광된 길을 이끌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대학 경영의 책임자로서 총장에 취임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2년은 저를 비롯하여 명지인 모두가 제2의 창학정신으로 대학 운영의 내실을 다지고 교육의 질과 여건을 개선시키는 한편, 장기적인 대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해나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 다듬고 보완해야 할 점이 남아 있지만, 나날이 성장해가는 우리대학교의 변화된 모습을 학생 여러분들도 충분히 느끼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명지대학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약속드립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지난해 우리대학교는 지출 부문에서 상당한 증가 요인이 있었지만 재학생 및 학부모님들의 교육비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등록금을 동결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경영의 내실화에 박차를 가하여 학생들의 교육환경 개선에 상당한 진척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는 교직원과 재학생 모두가 우리대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지혜롭게 어려움을 극복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는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경제 불황의 어려움을 겪었고 곳곳에서 위기론이 대두되었던 한 해였습니다. 올해까지도 불황의 여파가 이어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우려되는 면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경제는 2.8% 정도 물가가 상승했고, 이는 대학에도 운영비와 인건비의 상승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의 규모가 성장함에 따라 각종 운영·관리비용이 증가되고 있으며, 글로벌 대학으로서의 경쟁력 강화에 대한 사회적 필요성 또한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게 대두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우리대학교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대학으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교육과 연구 사업을 새로이 추진해야 하고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를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대학의 성장과 발전은 예산의 증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대학 예산의 상당 부분을 학생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현실을 감안할 때, 등록금 문제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입니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지난해 등록금이 동결되면서 잠재되었던 인상요인이 올해의 예산 편성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고 있으며, 올해 등록금 인상 요인으로 누적되어 작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에도 서민경제 상황에 가시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워 대학등록금의 인상은 부모님들의 가계 운영에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총장으로서 대학 예산 운영의 어려움보다는 사회 전반적인 경제의 어려움을 먼저 생각하면서 학생 대표 여러분들을 통하여 건의한 등록금 동결의 취지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2년 연속 등록금을 동결하는 것은 대학의 예산상 위기라 할 수 있지만 이를 대학 경영의 효율성을 찾는 긍정적 기회로 삼겠습니다. 따라서 2010학년도 예산 편성시 인건비를 제외한 각종 경비 및 행사성 예산을 면밀히 검토하여 소모성 지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저비용 고효율의 대학 운영을 이끌어낼 생각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 여러분이 기대하는 등록금 동결을 현실적으로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향후 교무위원회와 대학평의회의 심의과정에서 적절한 행정절차에 따라 학생 여러분의 건의 내용에 대한 동의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총학생회를 포함한 학내 모든 구성원들이 등록금 동결의 취지를 이해하고 고통을 분담하며 인내하는 한마음으로 대학발전을 위한 노력에 적극 동참하리라 믿습니다.

  경인년 새해에도 명지의 모든 학생들의 성장과 발전을 확신하며, 우리 모두가 명지대학교의 힘찬 미래를 위해 한마음으로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

 

 

 

 

 

 

2010년 2월 1일

총장  유 병 진

 

 

 

 어설픈 반어법의 최후

 결론->다음 해에는 꼭 올리겠다

스티븐 킹보다 러브크래프트가 더 무서운 이유

 

 

 무서운 아이...러브(LOVE)라는 말이 붙어 있어도 KING보다 무섭다니. 전제왕권을 위협하는 아이다. 사실 러브크래프트의 러브는 저 러브가 아니지만. 내가 러브크래프트를 알게 된 것은 잡지 판타스틱의 단편에 나오는, 조금 소심하고 조금 이상한 러브크래프트 덕분이었다. 그 때에는 조금 이상한 놈이로군...싶었는데 지금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읽고 나선...덕질도 정도껏. 환상도 정도껏.

 

 사실 나는 공포소설을 잘 못 읽는다. 잘 못 읽는다는 건 자세하게 못 읽는다는 것이다. 사건 전개만 알아야지 싶어 휙휙 넘기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초등학교 때 나온 공포소설 중 인상깊었던 게 있는데 여자가 차 뒤꽁무니에 거꾸로 매달려서 미친 듯이 웃는...아...그래. 그래도 요즘엔 스티븐 킹을 재미나게 읽는다. 오히려 코맥 맥카시의 그 로드가 더 공포 소설이 아닌가 하고 천연덕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그런데 러브크래프트를 읽은 뒤, 나는 한동안 공포소설 후유증에 시달렸다. 우선 러브크래프트는 한참 오래전에 쓴 작가이고, 타계하셨다. 내가 읽은 소설은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 이 작품, 꽤 무섭다. 물론, 어떻게 보면 옛날 좀비 영화의 공식인 어떤 마을을 방문했다->좀비가 나타났다->꺅 이 공식과 비슷하기도 하다. 허나 러브크래프트는 다르다. 그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끝까지 맨정신을 유지하다가 살아남거나 조금 후유증이 있어도 어쨌거나 살아남거나 혹은 살아남을 수도 있는데 죽거나 이런 식으로 깔끔하게 끝난다. 관객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의 작품에서도 그렇다. 한 남자가 그림을 그리다가 그 그림 때문에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그 남자는 산다. 샤이닝에서 작가는 죽지만 그 아내와 아이는 산다. 물론, 그의 단편집 중에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거나 재미있게 읽었다고 생각되는 글들은 다 그런 레파토리다.

 

 또한, 공포의 정체는 쉬이 밝혀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공포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 자체가 품위없는 행동이라고 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공포란 일종의 그림자로, 자세히 보기 위해 빛을 비추면 사라진다. 그럴만큼, 공포는 하찮은 존재로 느껴진다.

 

 허나 러브크래프트의 공포는 그 맛부터가 다르다. '크투르프가 부르는 소리'의 주인공은 마을을 탐사하던 도중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도망치는 데에 성공하나, 결국 자신이 그 종족의 일원이었음을 깨닫고 자신도 그 공포에 흡수되어 가는 것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는 감정이입을 충실하게 하는 양과 같은 독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이 공포는 샅샅히 파헤쳐 그 끝을 보여준다. 물론 그 끝은 종교와 같은 것이지만. 이는 빛을 비춰도 사라지지 않는 괴물을 보여준다. 괴물은 사라지지 않고 눈을 껌벅거리며 당신의 빈틈을 파고 들어올 순간을 노리기 때문이다.

 

  차라리 눈에나 보이지 않는다면 다행이지. 눈에 보이는 공포는 살아 있는 것이고, 그 살아 있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위협 혹은 죽음을 선사할 지도 모른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 텔레비전 화면 안에서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할 지 몰라 나는 두렵다. 손전등으로 비춰보고 싶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을까봐,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더 두렵다.

동양미술에 대한 부끄러움

 

 

 서양미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막상 동양미술은 한자도 모른다. 위진남북조, 시대 외우다가 몇번이고 고개를 떨군다. 외국어 이름이 더 쉽다고 말하다가도 어느새 부끄러워지는 지금. 동양에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뿌리도 모르기 때문일까? 그 때문이라기 보단, 어찌 보면 서양 찬양이 되어버리는, 극단적인 지금에 부끄러워지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국사 암기 노이로제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남의 탓으로 돌려 버리는 게 아마 편하겠지.

 

 

 

무식

 

 

 

 나는 내가 무식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아니, 종종이 아니다. 매번 한다. 유식한 사람을 보면 부럽다. 무엇보다도 더 많은 사람과 깊게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물론, 내가 말한 유식의 뜻은 단순히 법과 사전 1조항에 무엇이 있고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에서 탈세를 어느 정도 해야 정도껏에 안 드는지 안다는 것은 아니다.

평론에 대한 옹호

 

 

 솔직히 나는 어렸을 때 평론을 좋아하질 않았다. 비평 자체를 두려워 했다. 모호한 언어들과 이미지들로 조각조각난, 그리고 그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패치워크같은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루스트의 책을 사랑했다. 그러나 프루스트의 책도 일종의 평론이다. 그는 그가 느꼈던 모든 예술에 대한 것들, 세상에 대한 것들을 다 이어 붙여 그 장대한 서사를 완성한 것이다.

 

 평론도 하나의 서사였다. 서로 다른 두 서사를 비교하며, 평론은 그 이상을 제시한다. 두 국경이 맞닿아 있는 부분에 서서, 평론은 또 다른 국경을 본다. 나는 그런 평론이 좋다.

 

 혹은, 그 국경에서 보이는 풍경-메마르거나, 풍요롭거나-에서 다른 것을 끌어 내는 것. 어이가 없고 약간 뛰어넘는 감이 있어도 좋다. 재미 있다.

 

 그리고 솔직히 요즘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다. 소설책도, 시집도. 너무 많다는 건 줄여야 한다는 게 아니라, 그저 소소하게 하는 불평일 뿐이다. 읽고 싶은 책은 많은데 아마 읽고 싶게 될 책들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죽기 바로 몇시간 전에, 신간이 나온다면 어떻겠는가. 그 때 정말 '죽고 싶다'가 아니라 '살고 싶다'가 되겠지.

 

 솔직히 나는 내가 읽은 책에 대한 평론도 읽거니와, 읽지 않은 책의 평론도 읽는 편이다. 이는 그 책의 단면만 볼 수 있는 위험이 있긴 하지만 동시에 시간도 단축시킨다. 왠지 스포일러를 제대로 당하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부담감은 던다.

 

 물론, 내가 뒤통수 맞은 평론도 몇 있다. 배수아의 '북쪽 거실' 같은 경우에는 대중성에 취합하지 못하며 작가 자신의 골방으로 틀어 박히는...이라고 쓴 평론을 읽은 적이 있는데 배수아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니 이전 작품보다 더 성숙해졌고, 원래 소설이란 골방에 틀어박혀 쓰는 외로운 예술이고, 하지만 배수아는 대중들에게 좀 더 자신의 뜻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한다.

 

 최인훈의 광장을 보면 주인공이 죽기 전에 광장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어디서도 광장을 찾을 수 없었던 남자. 어떻게 본다면 대중이 상상하는 광장이란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 광장이라고 생각하고 나서 눈을 껌벅거리면, 자기가 처박혀 있는-컴퓨터의 네모난 화면만 하얗게 빛나는-시커먼 골방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아. 당신이 원했던 환상-광장이 보인다.

 

 

 어떻게 보면 평론은 광장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많은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큐브처럼, 어떤 공간 속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죽음과 삶의 여부가 갈리는 공간. 그게 페이크든, 논픽션이든. 픽션이든 메타 픽션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선택의 여지는 많아진다.

꼰대 의식

 

 

 어제였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게 되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넋놓고 헛소리도 할 수 있었고. 후쿠야에서 맛있는 튀김 정식을 먹어서 더 기분이 좋았다. 홍대 쪽 이스뜨와르 당쥬를 찾던 도중 케익이 많은 스노브로 가기로 했고, 그러던 중 파이가게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파이 가게 안은 적당히 따뜻했다. 후덥지근해서 들어오자마자 왠지 모르게 눈이 감길, 그 정도의 온도가 그리웠지만 꾸벅꾸벅 조는 것보단 이야기하는 게 낫겠거니. 싶었다. 진열장 안 파이는 곳곳에 이름표를 달고 예쁘게 피어 있었다. 종류도 많았고. 들여다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나 누가 그랬던가. 보는 것과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고. 그 간극을 뼈저리게 느꼈다. 파이는 별로 맛이 없었다.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괜찮았다. 편의점에서 나오는 냉동쇼트케익보다는. 이렇게 나쁜 인상으로 남은 것은 어쩌면 그 카페에서 있었던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어떤 공간을 어떤 의미로 인지하는가, 어떤 인상을 받게 되는가는 어쩌면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나 일어날 법한 일을 연상케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저번에 읽었던 도시 건축 디자인 책에서는 광주와 부산, 인천 등 각각 지역 도시를 나누어 분석하면서 그 도시의 경험과 역사, 사는 사람들을 고려한 디자인으로 그 공간만의 고유성을 개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공장의 빵틀에 찍혀 나오는,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평등함보단 말이다. 사실 저 평등함은 가면에 불과하다. 가면 속에는 평등함이란 없다.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던 도중이었다. 나는 그간 궁금했고 고민했던, 그러나 쉬이 말하지 못했던 일을 꺼내 놓았다. 나는 우익인지 좌익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현 정권이 우익을 표방하고 있는 지금, 예술은 선명하게 좌익을 드러낸다. 우파 예술인도 있을텐데, 왜 좌파의 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일까? 그러나 좌익 정권이 있었던 나라의 예술에서는 우익의 색이 강했다. 어떻게 본다면, 예술 자체는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이고 수정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익과 좌익은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고 싸울 게 아니라, 일종의 반대되는 것으로써 중립을 이뤄야 할, 그런 다른 시점이 아닐까. 그 생각을 말하려고 입을 연 찰나, 나는 옆에 앉아 있던 한 아주머니의 충고를 들어야 했다. 아주머니는 예술이란 혁명이고, 그렇기 때문에...뭐라고 말씀하셨지만, 난 사실 그 말의 반도 귀담아 듣질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요즘 상황 자체가 진저리가 난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하는 훈계도 지겹고 아주머니들이 앉아 있는 사람 앞에서 힘들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느니 애초부터 서서 간다. 그렇게 서서 가다 보면, 누군가가 자리를 권해주기도 한다. 학생, 책이 많네. 좀 앉아. 그러면 나는 단순하게 아니예요. 할머니 앉으세요. 라고 하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나는 착한 학생이 되고 만다. 사실 처음부터 나쁘다는 시선 자체를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뿐인데도.

 

 고등학교 때에는 나보다 한두살 많은 사람들에게 훈계를 듣는다는 것, 기합을 받는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런데 어느새 보니 후배들을 보며 조금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내 자신이 있었다. 그 순간 화들짝 놀랐고 혐오가 들끓어 올랐다. 그래서 아예 말을 놓았으면, 싶었다. 무의식 중에는 아직도 그에 반발하는 감정이 있지만.

 

 인간이란 이성이 있고, 또 감성이 있기에 성립되는 '동물종'이 아닌가 싶다. 디오니소스적 감성은 무절제, 충동이라지만 사실은 숭고에 가까워지려는 것에 불과하다. 몇몇은 이를 잘못 생각해 '방종'으로 치닫는다.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추상적인, 손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은 그 무언가에 다가가기 위해 몸을 깎고, 깎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꼰대' 의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꼰대'를 혐오한다는 것, 은 그저 나에게 뭐라고 충고를 하는 사람-그 사람이 옳든 틀리든-이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 혹은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텃세를 부리는 것밖에 되질 않는다고 생각한다.

 

 

 친구는 '꼰대'를 듣고선 강의를 들어보라고 추천했다. 좋은 의견이다. 친한 사람들의 말은 곧잘 받아들이는 내가 왜 그 아주머니의 말은 한 마디도 듣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사실은 아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