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때만 되면 나는 시험 공부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질 못한다. 음악이라도 들으면 꼭 죄 지은 기분이 든다. 이것도 강박이라고 해야 하나. 심리학 수업 들으면서 조금 나아졌긴 했지만. 이번 시험은 굉장히 기분 좋게 봤다. 심리학 공부도 재미있었고 마지막 시험이라고 생각하니 현대시 수업도 들을만 하더라. 문제는 이제부터 할 일이 많다는 거지만, 글쓰는 게 좋다.
다른 사람들에게 요즘 신경을 안 써준다는 동기의 말을 들었다. 문자도 제대로 답장 못 하고, 네이트온도 안 들어가고. 그게 안 써준건지. 사실 학회의 강제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참이기는 하다.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좋다.
마시고 있노라면 다른 음식은 같이 안 곁들여 먹어도 될 것 같다.
홍대 카페베네도 좋다. 의자가 넓어서 웅크려 앉을 수 있다. 물론, 그러면 안 되지만.
아주 가끔 그렇게 한다.
최승자 시인은 시집을 죽 내다가 마음의 병에 걸려서 십년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최근 '쓸쓸해서 머나먼'이라는 시집을 냈고, 사람들은 그녀의 독기가 빠졌다며 아쉬워 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반응들. 최승자의 시를 읽다 보면 괴롭다. 그녀가 그녀의 고통을 깎아내고 깎아내고 끝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최승자론을 쓸 때 조연호와 비교하면서 그녀는 죽음이 삶의 연장선에 있다고 봤고, 조연호도 그랬지만 최승자는 삶도 죽음도, 어느 쪽에서도 위안을 발견하지 못했다. 조연호는 희망을 바라봤지만, 최승자는 절망만 보았다. 내가 1년 전, 그녀의 시론을 쓰면서 그녀가 아이오와에서 쓴 '어떤 나무들은' 책을 읽고 그녀는 희망을 향해 나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라고 했는데 교수님은 최승자가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그리고 절필. 충격적이었다.
누군가와 쉼없이 이야기하기보단 지금 이렇게 혼자 있는 게 좋다. 인간 심리를 공부하다가 성격의 유형들 몇을 알게 되었다. 동기는 그걸 보고 나한테 분열성 성격 같다고 했다. 타인과의 관계에 그닥 기대를 갖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이걸 욕이라고 해야 하나, 분석이라고 해야하나. 학교에서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물론, 카페 갈 때는 혼자 있는 게 좋고 카페 가는 건 좋아한다. 어...
레포트는 아직도 수리가 안 되었나. 오기가 나서 답안지에 다원론적 미학에 대해 내 생각을 두서없이 써버렸다.
학교에서 중국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걸 듣고 동기들과 함께 시끄럽다고 웃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 나라 말이 아닌 다른 나라 말이라면, 그게 익숙치 않다면 똑같이 성가시지 않을까?
쩜쩜쩜.
봉평에 가서 햇빛 받고, 긁적거리고, 만약 웃게 되면 웃고.
학교 동기들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어딘가 콱 막힌 기분이 든다. 동기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다. 하수구에 머리카락이 잔뜩 걸려서 물이 내려가지 않는 것처럼 답답하다. 가끔 끊임없이 이야기하다보면 문득 울고 싶어질 때가 있다.
공황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창피하고 짜증이 난다.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하다가도 어쩌면 나는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고, 그 원인을 알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누구나 드라마를 가지고 있지만 그 드라마는 막장일 때가 있고, 사람들은 그 드라마를 말하면서도 반신반의한다. 내가 과연 이런 일을 겪긴 했을까. 말할 때는 농담처럼 말하다가도 혼자 생각해보면 우울해지곤 한다. 그래서 타인에게 계속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쩜쩜쩜.이라는 말이 좋다. 귀여워서. 소리내서 읽으면, 몇몇은 의성어 의태어를 소리내서 말하는 사람들 같다고 싫어하지만 좋다. 귀엽잖아. 홍상수의 '하하하'도 왠지 좋다. 귀여워서. 그런데 '귀여워'는 싫다.
싫은 건지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맘에 들지는 않는다.
아시아라이 저택의 주민들 좋다. 왠지 이야기가 너무 광범위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좋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을 물어볼 때 '데카메론'을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은 웃고 넘기지만 생각해보니 정말 못된 년이었군! 싹수가 노래!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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